[열린세상] 빈라덴 후폭풍과 보편적 정의/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열린세상] 빈라덴 후폭풍과 보편적 정의/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입력 2011-05-13 00:00
수정 2011-05-1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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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10년간의 신출귀몰한 도피생활 끝에 사살되었다. 미국은 축제분위기이고 이슬람 세계는 절망감에 빠졌다고 한국 언론은 전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빈라덴 사망이 확인된 후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세계를 향해 그 의미를 정의했다. 동시에 미국과 서방 세계는 앞다투어 알카에다의 보복 테러를 과대포장하면서 경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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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무언가 사태의 본질이 희석되고 중심가치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뉴스의 중심에는 빈라덴 사살에 대한 복수를 외치는 일부 반미극단주의자들의 섬뜩한 저항의지만이 가득하다. 알카에다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혐오감과 빈라덴의 몰락을 당연하게 여기는 절대다수 무슬림들의 이성적 모습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빈라덴은 이슬람권에서도 의심의 여지없는 테러리스트였다. 9·11 테러행위는 서구와 이슬람세계의 대립 구도가 아닌, 인류 전체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반문명적 범죄행위였다. 이슬람 세계 57개국의 유엔 격인 이슬람회의기구는 이미 알카에다의 테러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반이슬람적 행위로 규정하고 규탄해 왔다. 그렇다면 빈라덴이라는 주적의 제거는 중동지역과 서방세계 변화에 무슨 의미를 가질까?

첫째, 단기적으로 보복테러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라크 일부 지역에서 그의 죽음을 순교로 포장하고 반미시위를 벌이는 것은 그 지역이 미국의 점령 하에서 현재 전쟁 중인 사실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집과 일터를 빼앗기고 수십만명의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이 그들의 분노를 대변해 주고 복수를 해 줄 유일한 대부를 잃은 박탈감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빈라덴의 물리적 제거로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외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이 공감을 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미국인만을 위한 정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빈라덴을 잡겠다고 지난 10년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샅샅이 뒤지고, 그에 저항하는 탈레반 무장세력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수십만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의 생명은 어찌 되는 것인가.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이 가장 소중한 법이다. 모든 생명의 무게나 가치가 다르지 않을진대, 적어도 오바마가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숨진 생명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고 그에 대한 진정 어린 사과와 용서를 기대했었다. 그것이 진정한 정의이고 용서와 화합으로 향하는 의미 있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셋째, 빈라덴 죽음의 사실 여부는 본질적 내용과 거리가 멀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이고 그동안 알카에다를 팔아 반미 테러를 일삼던 이슬람권 급진무장세력들의 구심점이 약화되고,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의 정치세력화가 급속히 종식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넷째, 이러한 긍정적인 물결에 역행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잘못된 태도다. 테러범 제거만이 정의로 생각하고 지나친 분풀이식 복수를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평소 반알카에다 세력들까지도 비판적으로 돌아서게 했다. 아무리 테러의 원흉이지만, 가족들 앞에서 비무장의 적장을 무참히 살해하고, 서둘러 이슬람 관례를 무시하면서 수장시킨 행위들은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섯째, 미국이 진정한 정의를 내세우고 지금이라도 문명국가로서의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겠다면, 9·11 테러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종래처럼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질서, 국제법, 유엔 안보리 결의안,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최종 판결 같은 원칙에 충실하면서 보다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된다. 테러는 테러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누군가 먼저 분노와 복수를 포기해야 한다. 모든 것을 빼앗긴 채 기회만 노리는 급진주의자보다는 가진 자가 먼저 양보의 실타래를 푸는 것이 순서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지구촌의 테러는 그 이전보다 4배 이상 증가되었다는 슬픈 지표가 특단의 양보를 필요로 한다.

2011-05-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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