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쓰나미와 문화/조광 고려대 한국사 명예교수

[열린세상] 쓰나미와 문화/조광 고려대 한국사 명예교수

입력 2011-03-22 00:00
수정 2011-03-2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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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정리해 나갈 때부터 자연과 문화는 주요한 사색의 대상이었다. 문화에는 수많은 개념이 통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자연의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대응방법’이라는 규정도 있다. 물론 자연은 인간을 향해 도전만을 감행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그래서 고대사회 이래로 사람들은 자연과 문화를 서로 공존하면서 대립되는 존재로 이해해 왔다. 또한 이 도전을 통해 인간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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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최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은 리히터 규모 9.0의 진도였다고 한다. 이 지진의 여파로 쓰나미(津波)가 뒤따랐고, 지진을 이긴 원자력 발전소도 쓰나미 앞에 무너져 내렸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일본의 자연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드러내준 사건이라면, 이에 대응하는 그들의 태도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과 그 수준을 가늠케 한 사건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라는 인류문명에 대한 자연의 공격 가운데에서도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노력했으며, 힘써 평온과 질서를 유지해 나갔다. 처참하게 파괴된 슈퍼마켓 앞에서도 그들은 어김없이 줄을 서서 물건 값을 치렀다.

그들의 이와 같은 태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지구 다른 쪽에서 자연재해에 뒤따라 일어났던 혼란과 약탈 등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보면서, 그들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이 자연의 재난은 정쟁을 멈추게 했고, 국가적 위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치된 노력을 드러내 주었다. 피해를 입은 동포들을 돕고자 노력하는 일본인의 진지한 모습들이 도처에서 속속 드러났다. 이 엄청난 자연의 도전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들의 태도는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역사적 앙금이나 현실적 분쟁, 경쟁 등을 뒤로한 채 우리나라나 중국 그리고 미국 등 멀고 가까운 나라들이 일본을 앞다투어 지원하고자 했다.

이번 대지진과 지진해일 사건을 계기로 일본보다 더 가난한 나라들까지도 마음을 열고 일본을 돕기 위해 너도나도 일어섰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다는 일은 빈부의 정도를 떠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감정의 발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보편적 도움과 격려는 일본의 재난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좌절하고 있을 이와테의 주민들이, 그 아름다운 고향을 상실한 센다이의 시민들이 하루바삐 다시 일어나 새로운 일본을, 새로운 일본 문화를 가꾸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실은 하늘에 통하고 진심은 얼어붙은 상대를 움직이게 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은 진실한 인간성을 드높이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땅히 이번 지진과 쓰나미의 재난을 입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도와야 한다. 이는 질서의식과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배려심을 키워주어 우리 문화를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번에 일어난 자연의 사건을 통해 일본도 우리와 함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관찰자들은 지금 일본인이 보여주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와 연대의식은 일본인 내부에 국한된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인 스스로는 자신들 이외에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함을 지적한다. 여기에서 일본문화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 논의되기도 한다.

일본은 이번 사건을 통해서 많은 친구들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돕기 위해 전개한 작전명도 다름 아닌 ‘친구들’이었다. 물론 이번 일로 인해서 일본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들은 또 이와 함께 새로운 것을 얻었다. 그것은 일본문화에 불행을 통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는 현명함이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문화의 질을 고양시키고,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1-03-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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