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특허전문법원을 만들어 놓고/고영회 변리사·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열린세상] 특허전문법원을 만들어 놓고/고영회 변리사·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입력 2010-11-19 00:00
수정 2010-11-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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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변리사·대한변리사회 부회장
고영회 변리사·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우리나라 특허법원은 1998년 3월 1일 고등법원급으로 출범했습니다.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 특허전문법원이어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특허전문법원이기 때문에 특허에 관한 사건은 모두 여기에서 처리해야 전문법원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허법원은 2003년 9월부터 새로 지은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특허법원 새 청사는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로 지었습니다. 신청사는 앞으로 특허침해소송 담당이 특허법원으로 이전될 것에 대비하여 법정과 판사실 여유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특허침해소송은 각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에서 재판하고 있습니다. 특허전문법원을 설치해 놓고 특허침해사건을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허침해소송을 특허법원에서 담당하도록 집중하자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2차례 폐기됐고, 지금도 제출되어 있습니다. 이 법안은 변호사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대법원도 반대합니다. 속마음이야 어떤지 모르지만, 특허법원도 겉보기에 특허침해소송을 가져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전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특허법원이 미적거리는 것이 이상합니다.

실상 속사정은 다른 데 있습니다. 특허법원은 특허심판원의 심결에 대한 심결취소소송을 주로 처리합니다. 지금 심결취소소송은 70~80% 정도를 변리사가 대리하고 있어, 변리사가 압도적으로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변리사는 일반법원에서 변리사법 2조와 8조에 규정된 특허침해소송대리권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원은 실무에서 억지로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허침해소송사건을 특허법원에서 담당하면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 권리의 유효 또는 무효를 다투는 소송과 특허의 침해 여부를 다투는 소송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거의 같은 소송을 두고 이쪽은 인정하고, 저쪽은 인정하지 않으려니 낯간지럽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가져오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로 나타납니다.

같은 특허에 대해 침해소송과 심결취소소송을 다른 법원에서 다루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우려가 생깁니다. 그러면 사건 당사자는 혼란에 빠지고, 법원 판결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특허 관련 사건의 당사자는 전문성 있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싶어 합니다. 법률소비자인 발명가, 기업은 사건을 한곳에서 처리하길 바랍니다. 그런데도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법원과 법조인이 자기 업역 이해를 계산한 전략으로 사건집중을 반대하고 있으니 누굴 위한 법원인지요.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할 것인가는 변리사법에 규정된 소송대리권 관련 조항의 해석과 적용 문제입니다. 현행 변리사법 규정으로 침해소송대리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 일반법원이든 특허법원이든 상관없이 인정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침해소송을 특허법원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소송대리권 다툼의 전략으로 보입니다. 침해소송을 다른 법원에서 처리하면, 전문법원을 설치한 취지에도 어긋납니다. 사건 당사자들은 혼란스럽고 불편합니다. 밥그릇 다툼 때문에 엉뚱하게 사건 당사자가 피해를 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죠.

특허법원은 설립 목적에 맞게, 기술문제에 관한 전문법원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현재의 특허심결취소소송뿐 아니라, 특허침해사건의 1심과 2심, 기술유출사건의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의 1심과 2심도 특허법원에서 처리하도록 해야 전문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특허법원은 빨리 기술전문법원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법원이 직역 싸움에 끼어들면 안 됩니다. 법원은 소송당사자의 편익을 우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허법원청사는 특허침해소송 처리를 고려하여 설계하였기 때문에 노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지금 특허법원청사에는 가정법원 대전지원이 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법제도 전문화의 현주소입니다.
2010-11-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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