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제왕적 대통령제, 개헌이 해답 아니다/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열린세상]제왕적 대통령제, 개헌이 해답 아니다/윤성이 경희대 한국정치 교수

입력 2010-11-12 00:00
수정 2010-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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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청원경찰 입법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하여 11명의 현역 국회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였다. 검찰이 현역 국회의원 사무실 11곳을 동시에, 그것도 국회 회기 중에 압수수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야당은 국회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며 예산안 심사를 거부해 국회 기능이 일시 중단될 상황을 겪었다. 국회의원들이 불법적 후원금을 받고 청원경찰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섰다면 검찰의 수사를 받는 게 당연하다. 야당은 물론 여당대표까지 검찰의 과도한 수사방식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은 탓인지 검찰 수사를 지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누구도 법의 심판에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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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럼에도,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 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의구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검찰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총리실 직원에게 소위 ‘대포폰’을 지급한 사실을 밝히고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법무장관이 사실이라고 시인하였다.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에 청와대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자 검찰이 국면전환을 위해 무리한 수사방식을 택했다는 의심을 사게 된 것이다.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압수수색에 반발하는 것은 검찰 수사에 다분히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입법로비 의혹 사건의 본질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진행될수록 문제의 핵심이 입법로비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라 검찰과 청와대에 의한 국회와 야당 탄압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입법로비 의혹도, 대포폰 의혹도 모두 흐지부지되는 상태에서 사건이 종결될 것이다. 권력기관들이 서로 치고받는 와중에 결국 남는 것은 국민의 정치권력에 대한 불신뿐이다.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 정당, 검찰, 그리고 대법원 등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국민에 의해 주어진 권력을 법에 따라 공정하게 행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는 데 활용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 국민을 위해, 그리고 공정하게 행사되려면 권력기관 간에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권력의 집중과 권력기관 사이의 야합이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많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된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며 개헌을 주창하고 있다. 일부는 국무총리와 권력을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하고, 한편에서는 국회에 더 많은 권력을 주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 그렇지만, 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가를 따져 보면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가 해답이 될 수 없다. 대통령제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삼권분립이다. 현재 우리 대통령제의 문제는 이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사법부가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면서 대통령의 권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타파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회의 행정부 견제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당이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여당의원이 입각하여 행정부의 일원이 되는 것은 순수 대통령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국회의 고유권한인 법안발의 권한을 행정부와 공유하는 것 역시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대통령제와는 맞지 않는다. 굳이 개헌이 필요하다면 이 같은 변형적 대통령제 요소를 바로잡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에는 정치적 계산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여러 정파가 차기 대통령선거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권력구조로 개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섣부른 개헌논의로 정쟁을 불러일으키고 국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현행 대통령제 하에서 권력의 분산과 균형을 고민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다. 대통령 일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이 권력구조 개편의 핵심 사안이라면 더더욱 권력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순수 대통령제가 그 해답이 되어야 한다.
2010-11-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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