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해외시찰은 왜 가십니까?/강형기 충북대 지방자치학 교수

[열린세상] 해외시찰은 왜 가십니까?/강형기 충북대 지방자치학 교수

입력 2010-10-28 00:00
수정 2010-10-2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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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도 동산에 올라가 보고 나서 노(魯)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여름 풀벌레가 가을밤을 알 수 없고, 매미는 봄·가을을 알 수 없다고 했던 장자(莊子)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틀 속에 갇혀 살아간다. 따라서 다른 세계를 접할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환경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가장 단시간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해외시찰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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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기 충북대 지방자치학 교수
강형기 충북대 지방자치학 교수
인터넷으로도 엄청난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현장을 직접 보아야 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 예컨대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생활양식,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워즈워스의 시가 느껴지는 영국 북서부 호수지방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냥 책으로도 “아! 좋구나.”하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책만으로는 그러한 마을을 만드는 에너지를 얻기는 어렵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공직자들의 해외시찰 양태를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외시찰을 간다며 꽃놀이 관광만 하고 오는 사례가 너무 많다. 여론과 언론의 질책에도 아랑곳없이, 지금도 많은 공직자가 혈세로 관광계획을 짜고 있다.

공직자들이 관광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시찰을 간다면서 놀다 오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것을 대충 보는 것을 견(見)이라고 한다면, 테마를 가지고 보는 것을 시(視)라 한다. 관(觀)은 그 테마를 초점으로 음미하듯 두루두루 살피는 것이며, 찰(察)은 그 내용과 속성을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시찰(視察)이란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의 도시를 시찰한다는 것은 테마를 정해 놓고 그 테마를 중심으로 마디마디 분석하여 실무에 적용하려는 것이다. 조선의 조사시찰단이 일본을 방문하고, 보빙사가 미국을 방문한 이래 우리는 이러한 시찰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최근 공직자들은 시찰의 본질을 너무도 망각하고 있다.

철저한 시찰로 국운을 바꾼 대표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출범 4년을 맞이한 메이지 정부의 이와구라사절단은 미국을 비롯한 12개국을 순방했다. 국가 예산의 거의 2%를 사용한 그들은 20여 개월 동안 선진국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돌아와서 일본 정부의 요직에 들어가 자신이 보고 배운 것을 적용했다. 이토 히로부미도 그 사절단의 일원이었다. 당시 청나라의 실권자 이홍장(李鴻章)은 자신을 동양의 비스마르크라고 자처하면서 독일의 강력한 국가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메이지의 일본은 달랐다. 독불장군인 이홍장에 비하여 메이지 정부의 일본에서는 사절단 구성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했던 것이다.

다른 문화를 시찰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프랑스의 토크빌을 들 수 있다. 토크빌은 치열한 문제의식과 성찰하는 자세로 미국을 시찰했다. 불후의 명작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시찰이란 토크빌과 같은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준비한 만큼 볼 수 있다. 그래서 특정 사람이 본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사물이나 현상을 분석적으로 보려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목적이 있다. 따라서 시찰을 하려면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해외시찰은 외국의 실태를 그냥 보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보는 눈을 가지러 가는 것이다. 성공한 사례, 실패한 사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례를 통해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읽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해외시찰에 나서려는 공직자라면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무엇을 보려 하는가? 현장에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테마인가? 시찰을 다녀와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만약 이러한 물음에 하나라도 대답하지 못한다면 시찰계획을 취소해야 한다. 시찰을 가려는 공직자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시찰할 주제의 대부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은 공직자는 시찰을 가서도, 보내서도 안 된다.
2010-10-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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