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기회주의자/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회주의자/박현갑 논설위원

박현갑 기자
박현갑 기자
입력 2023-07-05 00:53
수정 2023-07-05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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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판사로 일하다 정치에 입문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대구의 딸이자 호남의 며느리’, 원칙과 소신을 정치 덕목으로 꼽아 잔 다르크에 빗댄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희망돼지통장을 앞장서 선전해 ‘돼지엄마’로도 통했다. 첫 여성 출신 5선 의원, 첫 여성 집권당 대표 등 공식 직함도 수없이 많다.

부정적 평가 또한 적지 않다. 당대표 시절 인터넷 댓글 수사 요청인 드루킹 특검으로 당내 유력한 대권 주자이던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감옥으로 보내 ‘아군 저격수’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런 추 전 장관에게 ‘기회주의자’라는 상징어가 하나 더 붙을 모양이다. 추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개혁을 놓고 신경전을 펴는 와중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장관직을 그만두라고 종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정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추 전 장관의 인터뷰 이후 정철승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추 전 장관이 ‘문 전 대통령은 기회주의자’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은 “대통령을 대놓고 그렇게, 제가 모신 대통령을 대놓고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며 정 변호사 주장이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그의 행보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그럴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지난 대선 이후 정치활동을 하지 않던 추 전 장관의 뜬금없는 문 전 대통령 저격에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활동 재개라는 평가가 많다.

권모술수가 판치고 철새 정치인들이 쏟아지는 정치판에서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적인 처신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일신을 위한 특권 누리기에 안주하는 작은 정치가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큰 정치를 하겠다면 최소한의 금도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책임의 정치, 소신의 정치를 펼 수 있어야 한다. 지역주의와 끝까지 싸우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이 평가받는 건 소신의 정치 덕분이다. 자신의 정치적 부활을 위해 전직 대통령을 또 짓밟으려는 기회주의적 행보에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2023-07-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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