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늦은 가을의 소망/황수정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늦은 가을의 소망/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3-11-09 00:08
수정 2023-11-09 00:0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예전의 집들은 크고 작은 광을 하나쯤은 품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손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었다. 볍씨, 씨감자, 씨마늘, 온갖 씨앗들. 이들을 몫몫으로 품은 자루나 포대, 궤짝들은 숭엄해 보였다. ‘최후의 보루’라는 말을 들으면 자루나 포대를 지키던 서늘한 광을 언제나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나는 감자나 양파 등속을 자루째 사들인다. 그런데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번번이 물러지고 만다. 지난달 들인 감자 자루에서는 벌써 싹눈들이 터져 날마다 난감하다.

어떤 공간을 잃으면 어떤 감정을 잃는다. 베란다에서는 ‘최후의 보루’ 같은 안식과 우툴두툴한 삶의 질감에 깃들일 수가 없다. 이즈음 툇마루 끝에 한참 앉아 보지 않고서는 늦가을 잔양 한 자락마저 아껴 쓰고 싶은 애틋함을 알 수가 없다.

길게 열리는 미닫이문이 있으면. 그 문 활짝 열어, 가을 깊어 늙어 가는 벌레소리에 오래 귀를 밝힐 수 있으면. 삶에 덤비지 않고 나는 삐걱대는 마음의 줄을 고를 수 있을 것만 같다.
2023-11-09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투표
'정치 여론조사'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최근 탄핵정국 속 조기 대선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여야는 여론조사의 방법과 결과를 놓고 서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론이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지게 제기되고 있다. 여러분은 '정치 여론조사'에 대해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절대 안 믿는다.
신뢰도 10~30퍼센트
신뢰도 30~60퍼센트
신뢰도60~90퍼센트
절대 신뢰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