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승용차를 몰고 출퇴근했지만 요즘에는 버스를 탄다. 언제부턴가 아침부터 한 시간 남짓 운전을 하고 나면 하루가 피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를 타니 출근 시간 내내 자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깐 조는 것만으로 머리가 맑아졌다.
운전하고 출퇴근할 때는 광역버스며 시내버스가 일종의 ‘흉기’로 보였다. 차로 서너 개쯤 넘나드는 것은 예사고, 웬만한 신호는 지키지도 않는다. 멀쩡히 가는 것 같아도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이른바 방어 운전이란 버스를 조심하라고 나온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니 난폭한 버스를 만날 때마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난폭 운전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교통환경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 곡예 운전을 하는 버스도 많지만 이해심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엔 휴일에 운전을 할 때도 웬만하면 버스에 양보한다. 운전대를 잡으면 보행자를 탓하고, 길을 걸으면 운전자를 탓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저 버스에 내가 탔겠거니 생각하면 운전 스트레스도 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운전하고 출퇴근할 때는 광역버스며 시내버스가 일종의 ‘흉기’로 보였다. 차로 서너 개쯤 넘나드는 것은 예사고, 웬만한 신호는 지키지도 않는다. 멀쩡히 가는 것 같아도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 이른바 방어 운전이란 버스를 조심하라고 나온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니 난폭한 버스를 만날 때마다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난폭 운전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교통환경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 곡예 운전을 하는 버스도 많지만 이해심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엔 휴일에 운전을 할 때도 웬만하면 버스에 양보한다. 운전대를 잡으면 보행자를 탓하고, 길을 걸으면 운전자를 탓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저 버스에 내가 탔겠거니 생각하면 운전 스트레스도 덜하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5-01-16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