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슬픔을 느끼거나, 티없이 화창한 날 기분이 울적해지는 경향이 있다. “나만 그런 걸까? 성격이 이상한 걸까?” 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아름다움이 자극하는 슬픔이 철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연구대상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건축’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독교 철학자들은 아름다운 것들이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한때 누렸던 흠 없는 완벽한 삶의 상징이며, 죄로 물든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삶에 대한 상실감과 갈망 때문에 슬퍼진다고 해석한단다. 굳이 신학을 인용하지 않아도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내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매혹적인 대상을 만나고 나서 서러움이 밀려드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다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장 심각한 때라는 구절에서 그만 허를 찔렸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었던 거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아름다움이 자극하는 슬픔이 철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연구대상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알랭 드 보통이 쓴 ‘행복의 건축’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독교 철학자들은 아름다운 것들이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한때 누렸던 흠 없는 완벽한 삶의 상징이며, 죄로 물든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삶에 대한 상실감과 갈망 때문에 슬퍼진다고 해석한단다. 굳이 신학을 인용하지 않아도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내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매혹적인 대상을 만나고 나서 서러움이 밀려드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아름다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간은 우리 인생이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장 심각한 때라는 구절에서 그만 허를 찔렸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었던 거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3-04-26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