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그 노인네가 생각났을까.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은 사람처럼 깡마른 체구에 구부정한 등, 꾀죄죄한 광목 두루마기를 걸친 모습은 누가 봐도 볼품없는 산속 노인네였다. 해질 무렵 여섯살 된 막내 손자 용표를 찾는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고, 지나다 마주치는 눈빛은 형형했다. 88올림픽이 있던 해 여름, 도회지에서 흘러들어온 청년들의 숙소엔 산중에서 접하기 어려운 진미가 가득했다. 용표는 ‘보급품’이 오는 날이면 좁은 마당을 어슬렁댔다. “용표야, 너 이놈” 할아버지의 불호령에 어린 손자는 쏜살같이 집으로 내달렸다. “아이 흔들지 마라.” 늦은 밤 청년들을 찾아온 노인의 단호한 한마디였다.
빼어난 침술은 어디서 배웠을까. 접질려 퉁퉁부은 발목도 노인의 침 한방이면 이튿날 부기가 거짓말처럼 빠졌다. 눈치를 살피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묻자 “네 일이나 똑바로 해.”라고 일갈하며 휑하니 문 밖을 나선다. 탁류의 시대다. 오래전에 고인이 됐지만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꼬장꼬장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립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빼어난 침술은 어디서 배웠을까. 접질려 퉁퉁부은 발목도 노인의 침 한방이면 이튿날 부기가 거짓말처럼 빠졌다. 눈치를 살피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묻자 “네 일이나 똑바로 해.”라고 일갈하며 휑하니 문 밖을 나선다. 탁류의 시대다. 오래전에 고인이 됐지만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꼬장꼬장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립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2-07-19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