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걸음을 멈추고 중랑천 잉어떼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팔뚝보다 크고 토실토실 살이 오른 잉어들이 느릿느릿 헤엄을 치고 있다. 꼬리를 흔들며 몸통을 이리저리 꼬는 모습이 봄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버들가지 같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 ‘참 잘 논다.’는 생각에 이르자, 장자와 혜자의 호량지변(濠梁之辯)이 떠오른다.
혜자와 호수의 다리 위를 걷던 장자가 물고기를 바라보며 “저렇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겠지(魚出遊從容, 是魚之樂也).”라고 하자, 혜자는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子非魚, 安知魚之樂).”라고 받아친다. 장자는 곧바로 “자네는 내가 아니거늘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찌 아는가(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라고 응수한다. 둘의 대화를 말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자기의 견해와 관점을 분명히 한 주관론 경연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살다 보면 타인의 주장을 무시하기 일쑤다. 생각이 다 다른 것을 자기 생각만 고집해서야….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혜자와 호수의 다리 위를 걷던 장자가 물고기를 바라보며 “저렇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으니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겠지(魚出遊從容, 是魚之樂也).”라고 하자, 혜자는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子非魚, 安知魚之樂).”라고 받아친다. 장자는 곧바로 “자네는 내가 아니거늘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찌 아는가(子非我, 安知我不知魚之樂).”라고 응수한다. 둘의 대화를 말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자기의 견해와 관점을 분명히 한 주관론 경연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살다 보면 타인의 주장을 무시하기 일쑤다. 생각이 다 다른 것을 자기 생각만 고집해서야….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2-05-22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