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딸, 딸, 아들. 토요일 낮 백화점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가족을 바라봤다. 딸 셋에 아들 하나, 단란한 집안이었다. 아들이 가장 어렸다. 네 살쯤 되어 보였다. 딸들은 그 위로 한두 살 터울 같았다. 아들을 낳으려다가 딸 셋을 낳은 것이 아닐까 싶다. 네 아이 모두 밝고 건강해 보였다. 아이 넷이 한 줄로 앉아 젓가락으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 맞은편에 앉은 부모를 바라봤다. 40대로 보이는 부부는 선하고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주는 즐거움이 크겠지만, 이만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해 봤다. 우리 부부는 딸 하나 키우는 데도 정신이 없는데. 생각은 생각을 낳고, 상상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잠시 뒤 옆자리에 부부 한 쌍이 더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네 아이 가운데 둘은 이들의 자녀였던 것이다. 이유 없이 실망스럽고 아쉬웠다. 대가족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엔 아이 둘 낳아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아이들 맞은편에 앉은 부모를 바라봤다. 40대로 보이는 부부는 선하고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주는 즐거움이 크겠지만, 이만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해 봤다. 우리 부부는 딸 하나 키우는 데도 정신이 없는데. 생각은 생각을 낳고, 상상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잠시 뒤 옆자리에 부부 한 쌍이 더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네 아이 가운데 둘은 이들의 자녀였던 것이다. 이유 없이 실망스럽고 아쉬웠다. 대가족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엔 아이 둘 낳아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2012-02-07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