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버지는 택시를 탈 때까지 뒤따라 오셨다. 몇번이고 그만 들어가시라고 해도 “알았다.” 하시며 뒤를 좇으신다. 내 손엔 고구마 줄거리 무침을 담은 큼지막한 통이 들려 있었다. 이때쯤까지는 고구마 줄거리가 나올 거다. 식구들과 방에 빙 둘러 앉아 줄거리를 벗기던 기억이 새롭다.
고구마 줄거리 무침은 내겐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이 무침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자식이 이렇게 좋아하니 열단 넘게 벗기셨단다. “네 아버지가 큰 고생하셨다.”고 어머니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고구마 줄거리를 벗겨본 사람은 알겠지만 먹을 만큼 벗기려면 고생바가지다. 팔팔한 나이에도 허리가 아팠다. 고구마 줄거리가 집에 보이면 슬쩍 피했던 일도 있었다.
날이 차다. 수년 전 후두암 수술 뒤 그 좋아하시는 술 한 방울 안 하시는 아버지시다. 그렇게 즐겨 부르시던 노래도 들을 수 없다. 아버지 18번은 명국환의 ‘백마야 울지 마라’다. 취해 부르시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고구마 줄거리 무침은 내겐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이 무침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자식이 이렇게 좋아하니 열단 넘게 벗기셨단다. “네 아버지가 큰 고생하셨다.”고 어머니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고구마 줄거리를 벗겨본 사람은 알겠지만 먹을 만큼 벗기려면 고생바가지다. 팔팔한 나이에도 허리가 아팠다. 고구마 줄거리가 집에 보이면 슬쩍 피했던 일도 있었다.
날이 차다. 수년 전 후두암 수술 뒤 그 좋아하시는 술 한 방울 안 하시는 아버지시다. 그렇게 즐겨 부르시던 노래도 들을 수 없다. 아버지 18번은 명국환의 ‘백마야 울지 마라’다. 취해 부르시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1-10-04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