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한달에 한번은 꼭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교편을 잡은 아버지의 월급날이자 자식들한테는 약간의 떡고물(?)이 떨어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기 한근과 월급이 담긴 노란 봉투를 들고 귀가하셨다. 봉투 겉봉에는 1원짜리 단위까지 적혀 있었다.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불러 주는 쌀값, 연탄값, 반찬값 등을 주판으로 셈했다.
예상 살림값이 봉투에 적힌 금액보다 많으면 두 분은 요리조리 다시 꿰맞췄다. 그러길 30여분. 최종 조율이 되면 항목별로 돈을 나눴다. 약간의 푼돈은 우리들 몫이었다. 용돈도 챙기고, 고기도 먹는 그날은 정말 부러울 게 없었다.
요즘은 그런 맛이 없다. 이메일로 보내 주는 급여명세서가 전부다. 월급도 통장으로 입금돼 만져 보는 재미도 없다. 거기다 집사람과 같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월급 나왔다고 나 혼자 위엄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금과 동전이 든 노란봉투를 건네받아 침 발라 가며 세어 보는 아버지 때의 추억이 가끔씩 그립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예상 살림값이 봉투에 적힌 금액보다 많으면 두 분은 요리조리 다시 꿰맞췄다. 그러길 30여분. 최종 조율이 되면 항목별로 돈을 나눴다. 약간의 푼돈은 우리들 몫이었다. 용돈도 챙기고, 고기도 먹는 그날은 정말 부러울 게 없었다.
요즘은 그런 맛이 없다. 이메일로 보내 주는 급여명세서가 전부다. 월급도 통장으로 입금돼 만져 보는 재미도 없다. 거기다 집사람과 같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월급 나왔다고 나 혼자 위엄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금과 동전이 든 노란봉투를 건네받아 침 발라 가며 세어 보는 아버지 때의 추억이 가끔씩 그립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1-07-26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