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비움/곽태헌 논설위원

[길섶에서] 비움/곽태헌 논설위원

입력 2011-04-08 00:00
수정 2011-04-0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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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나온 뒤에는 전화번호를 수첩에 기록할 필요가 없어졌다. 명함을 받으면 으레 자동적으로 휴대전화에 입력하는 게 습관 아닌 습관이 된 지도 꽤 오래됐다. 얼마 전 휴대전화에 새로운 번호를 입력하려다 실패했다. 이미 전화번호 입력 한도 1000명이 꽉 찼기 때문이다.

필요없는 것을 지우려고 저장된 번호를 순서대로 보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간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전화통화조차 없던 사람들을 지워 나갔다.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사실상 전무한 사람의 이름과도 이별을 했다. 과거 직책상 알았기 때문에 지금은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제외했다. 번호가 바뀐 탓에 특정인의 이름이 2~3개씩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니 앞으로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될 지인의 번호를 추가하는 데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필요하지도 않은 이름과 번호를 저장하고 다녔던 셈이다. 어찌 보면 게으른 탓이고, 어찌 보면 욕심 때문이다. 비워야 새롭고 좋은 다른 것을 채울 수 있는 법이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2011-04-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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