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봄날 풍경/이춘규 논설위원

[길섶에서] 봄날 풍경/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0-04-30 00:00
수정 2010-04-3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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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버스정류장에서 보초근무를 마치고 본대로 가는 의경 4명이 귀마개에 방한복까지 입고 종종거리며 서 있다. 군대 경험에 비추면 새벽에 보초 설 때는 실내에 있을 때보다 훨씬 춥다. 그렇다 해도 4월 말 복장치곤 무겁다. 머리 위로 겨울철새인 기러기떼가 때늦게 북상해 간다.

버스 안 풍경도 눈이 의심스럽다. 두툼한 외투를 입은 손님이 적지 않다. 목도리까지 두른 사람도 있다. 거리에도 겨울옷으로 중무장한 시민들이 눈에 띈다. 겨우 손톱만 한, 여린 은행잎들이 강풍에 못 이겨 무수히 떨어져 있다. 무참하다. 고산지대에서는 철 지난 눈소식도 들려온다.

겨울이 유난히 혹독했기에 화사한 봄날 풍경을 기대했건만 봄날이 철없다. 비가 자주 내려 시설채소나 과일 작황이 나쁘다고 농민들이 울상이다. 봄·여름 상품을 파는 상인들의 어깨가 처졌다. 자연이 인간의 상식을 짓뭉개며 위력 시위를 하는 것 같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허욕에 눈먼 인간들에게 탐욕을 버리라는 자연의 일깨움 같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0-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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