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2-12-08 20:34
수정 2022-12-0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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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도 인생에서 꺾이지 않길”
손흥민,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포기 안 하고 최선 다하는 마음
대표팀이 우리에게 준 큰 선물

이순녀 논설위원
이순녀 논설위원
‘명언 제조기’로 유명한 손흥민 선수는 이번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인상적인 어록을 여럿 남겼다. 안와골절 부상으로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뛰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개막 전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국민들이 썼던 마스크에 비하면 내 마스크는 아무것도 아니다. 단 1%의 가능성이 있다면 앞만 보고 달리겠다”고 담담히 밝혀 축구 팬들을 울컥하게 했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16강 진출이 확정됐을 땐 “주장인 제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선수들이 커버해 줘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어 “무엇보다 벤투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같이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직전 가나전에서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 조치를 당해 관중석에서 포르투갈전을 지켜봐야 했던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느껴지는 말이다. 주장으로서의 품격을 보여 준 감동적인 인터뷰라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제 오후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손흥민의 명언은 계속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화제가 된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질문에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준 정말 멋있는 말”이라며 “국민들도 인생에서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늘 잘하는지는 모르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팬들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는 손흥민이기에 ‘포기하지 말고 전진하라’는 격려와 위로, 희망의 메시지가 더 울림 있게 다가왔다.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 문구가 널리 알려진 건 지난 3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다. 통쾌한 승리 직후 선수들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관중석에서 건네받아 펼쳐 든 모습이 중계되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원래는 지난달 게임 프로팀 ‘DRX’의 리그오브레전드 우승 인터뷰에서 파생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던 문구였다. 약체팀 ‘DRX’가 강팀을 연달아 누르고 세계대회에서 승리한 드라마 같은 서사와 축구대표팀의 기적 같은 16강 진출이 겹쳐지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상징하는 구호로 떠올랐다.

십수년 전 ‘좌절금지’라는 픽토그램이 젊은층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영어 알파벳 대문자를 연결해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사람을 형상화한 그림(OTL) 위에 대각선을 그어 좌절하지 말라는 뜻을 표현했다. 좌절(挫折)은 마음이나 기운이 꺾이는 것이니, 좌절금지와 꺾이지 않는 마음은 같은 의미의 유행어인 셈이다. ‘불굴의 의지’ 같은 고리타분한 한자어에 비해 시(詩)적인 표현이 대중의 감성을 자극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대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마법 같은 문구들이 있었다. 너나없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IMF 외환위기 때는 ‘부자 되세요’가 방방곡곡 울려 퍼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꿈은 이루어진다’로 요약된다. 꿈만 같던 4강 진출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불가능한 꿈은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카타르월드컵 개막식에서 부른 노래도 ‘드리머스’,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누군지 봐 / 우린 꿈꾸는 사람들이야 / 우린 이뤄 낼 거야 / 우린 믿으니까.’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이제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 북한의 노골적인 핵위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나라 안팎의 내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도, 개인 일상에서도 험난한 시련과 도전의 시간이 닥칠 수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신념과 의지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 축구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2022-12-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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