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백신이 나오더라도/임병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백신이 나오더라도/임병선 논설위원

임병선 기자
입력 2020-11-26 21:52
수정 2020-11-2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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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 논설위원
임병선 논설위원
“백신 얼른 맞고, 마스크 벗고 마음껏 여행 다니고 싶다.”

지난 2주 정도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서 성공했다는 뉴스들이 쏟아지자 사람들이 보인 반응 가운데 하나다. 10개월을 이어 온 지긋지긋한 싸움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것이다.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전한 임상시험 결과는 옥죄인 일상에 한 줄기 빛을 던지는 것 같다. 70~90%대의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보도는 조만간 우리 손에 백신이 쥐어질 것이란 희망을 키웠다.

먼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모더나 최고의료책임자(CMO) 탈 작스의 지난 23일(현지시간) 악시오스 인터뷰부터 들어보자. “백신 시험 결과를 접한 대중은 백신을 맞으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과다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시험 결과는 사람들이 누군가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옮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입증한 것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얘기하면 백신이 감염을 차단한다는 어떤 확고한 증거도 없다. 따라서 백신을 접종했다는 이유만으로 생활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백신을 배송하기 시작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백신이 감염을 줄여 준다는 분명하고도 충분한 데이터를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94.5%의 예방 효과가 있다고 대중들이 믿게 해놓고 일주일 지나 슬그머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화이자의 3상 임상 최종 결과는 원래 2022년 12월 11일 나올 예정이다. 백신 개발에는 10년 걸리는데 이제 10개월 됐을 뿐이다. 신종플루처럼 검증된 백신 제조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인류는 초유의 실험을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가장 먼저 접종한 이들의 결과를 데이터로 뽑아 본 것에 불과하다. 동물 실험보다 인체 임상시험에는 윤리적 잣대가 더 엄격하다. 약효가 입증된 ‘똘똘한’ 치료제가 없는 마당에 백신 후보물질을 인체에 함부로 투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 참가자들은 일상생활을 계속하도록 해 코로나19에 감염되게 만든다.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나라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이유다. 5만명을 목표로 지금까지 4만 4000명 정도를 참가시킨 화이자 시험의 초기 참여자 가운데 확진된 94명을 조사했더니 백신 후보물질을 투약한 이들이 8명, 가짜 약을 투약한 이들이 86명이었다는 것일 뿐이다. 후보물질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효과를 거뒀는지, 어떤 식으로 가능했는지 검증한 것이 아니다.

그나마 화이자나 모더나나 데이터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다. 모집단이 워낙 작고, 확신이 없어서다. 국내업체와 공급 계약을 맺어 제작 및 보급에 유리하고 상온 보관 등 이점을 갖춘 아스트라제네카의 후보물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환자가 폭증해 비상수단을 쓰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환자가 적은 우리가 서둘러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효과와 안전성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대중 백신이 이미 나와 있다고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희망이 현실을 압도했다. 과학은 더디 가고, 대중은 수십㎞ 앞을 달려간다. 있지도 않은 백신의 가격이 어떻니, 유통과 배급이 어떻니 갑론을박하고 무능한 정부가 왜 빨리 구매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느냐고 호통친다.

그들의 성화대로 ‘똘똘한’ 백신을 정부가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백신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없는 건강한 인체 안에 들어가야 한다. 양성인 줄 모르고 주입했다간 큰일난다. 그래서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만 접종 가능하다. ‘내가 먼저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안전하다고 완전히 입증될 때까지 절대 맞지 않겠다는 정반대 사람도 집단면역 달성에 어려움을 미칠 수 있다. 인구 70%가 항체가 형성된 집단면역이 안 되면 마스크를 벗는 날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설대우 중앙대 약대 교수는 “지금 내 손에 쥐어진 마스크, 손씻기가 가장 효과적이고 입증된 백신”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한방에 해결되는 멋진 해결책이란 없다. 그래도 대중은 조금만 쉽고 편한 길이 보이면 그 길로 내달리고자 한다.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과 대중을 연결하는 언론은 ‘제목 장사’ 때문에 헛된 꿈을 불어넣는 데 열심이다. 갑갑한 노릇이다.

bsnim@seoul.co.kr
2020-11-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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