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갑 논설위원
굳이 교황 발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빈부격차는 세계 각국의 공통분모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진보적 공공정책 연구단체인 ‘센터 포 아메리칸 프로그레스’ 모임에 참석해 “소득 불균형이 확대돼 계층 간 이동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어 아메리칸 드림을 위협한다”면서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빈곤층은 2008년 3982만명에서 지난해 4649만명으로 늘었다. 이 기간 전체 인구 중 빈곤층 비율도 13.2%에서 15.0%로 올랐다. 반면 가계당 평균소득은 2008년 5만 3644달러에서 지난해 5만 1017달러로 외려 약간 줄어들었다.
중국도 비슷하다. 베이징대 중국 사회과학조사센터가 ‘중국 가정 추적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상위 5%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하위 5% 가구의 234배에 육박했다. 상위 5%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소득은 3만 4300위안(약 628만원)이었으나 하위 5% 가구의 소득은 1000위안(약 18만 3000원)에 그쳤다. 최근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잃은 남아공도 인종차별 정책은 사라졌으나 빈부 격차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계청의 ‘2013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가구주의 소득, 직업, 교육, 재산 등을 고려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의식 중 상층은 1.9%에 불과하다. 반면 중간층 51.4%, 하층 46.7%였다. 2011년과 비교해 중간층은 1.4% 포인트 줄었지만 하층은 그만큼 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관계로 부유층과 빈민층 간 갈등을 꼽았다는 대학생 의식조사도 있다.
빈부격차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힘들다. 소득구조 개혁과 재정 지출 전환 등 경제정책과 함께 복지확대, 교육기회 및 고용 보장 같은 사회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실업자의 재취업을 돕는 등 생산적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국가의 몫이다.
이런 제도 마련 못지않게 공정한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최근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한 소득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공정한 경쟁의 부재와 부의 독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정한 경쟁은 공정한 환경이 마련될 때 가능하다. 공정한 환경조성 의무 또한 국가에 있다.
정부로서는 재정 적자와 글로벌 경쟁이라는 환경에서 빈부 격차도 해소하고 경제성장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국민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가 무상보육 실시, 공기업 민영화 등 국민 행복과 자유를 증진한다며 증세 등 주머니를 빌리려는 정책이나 공공성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을 펴려고 할 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세금 부담이나 요금인상 등 내키지 않는 결과물이 나와도 혼란을 덜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빈부 격차 확대나 빈곤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사회환경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eagleduo@seoul.co.kr
2013-12-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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