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수초에 관한 의외의 사실들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수초에 관한 의외의 사실들

입력 2024-02-20 23:30
수정 2024-02-21 17:0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미지 확대
복수초속 식물은 복과 장수를 의미하며 우리말로 얼음새꽃으로도 불린다.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개복수초.
복수초속 식물은 복과 장수를 의미하며 우리말로 얼음새꽃으로도 불린다.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개복수초.
일본 도쿄대 고이시카와 식물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동백 정원에서 꽃을 관찰하던 중 한 일본인 할아버지가 멀리서 나를 부르더니 와 보라는 손짓을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웃는 낯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꽃이 피었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복수초 꽃봉오리가 있었다. 노지에 풀꽃이 핀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본 나는 반갑다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어느새 식물원에 있던 관람객이 모두 복수초 곁으로 모여들었다.

아직 작은 꽃봉오리 상태인 데다 특산식물이나 멸종 위기종과 같은 특정 식물도 아니고, 꽃이 귀한 식물도 아닌데 사람들은 복수초만 보면 이토록 반가워한다.

수목원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원내에 복수초가 피면 직원들 사이에 금세 소문이 돌았다. 그 얘기를 듣고 점심시간에 산책하러 나가면 온 직원이 복수초가 피었다는 곳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이 복수초를 이토록 반기는 이유는 춥고 긴 겨울에 지친 우리에게 가장 처음 봄소식을 알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복수초가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은 나름대로 큰 도전이다. 초봄에는 다른 계절보다 영양분과 개화를 위한 에너지, 수분을 도울 곤충이 적기 때문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복수초는 오목한 꽃잎으로 열을 모아 주변의 눈과 얼음을 녹이면서 꽃을 피운다. 이 열은 매개곤충의 체온을 높여 수분을 잘할 수 있도록 도우며, 암술을 따뜻하게 만들어 종자를 잘 맺게도 한다.

복수초는 종명인 동시에 복수초속(아도니스속) 식물을 총칭한다. 우리나라에는 복수초와 개복수초 그리고 세복수초가 분포한다. 복수초의 개화는 신문과 뉴스에도 자주 보도되며, 이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하지만 복수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외의 면모도 있다.
이미지 확대
북아프리카부터 유럽에 분포하는 플라메아복수초의 꽃잎은 다홍색이며 꽃잎은 좁고 길다. 복수초에 비해 꽃이 더 크고 튼튼하다.
북아프리카부터 유럽에 분포하는 플라메아복수초의 꽃잎은 다홍색이며 꽃잎은 좁고 길다. 복수초에 비해 꽃이 더 크고 튼튼하다.
복수초는 초봄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가장 빨리 잎과 꽃을 피우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복수초가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꽃피우는 여름꿩복수초도 있다. 이들 학명의 종소명 ‘애스티발리스’ 또한 라틴어로 ‘여름의’란 뜻이다. 게다가 이들 꽃잎은 빨간색이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복수초는 모두 꽃잎이 노란색이다. 하지만 복수초속 식물 중에는 빨간 꽃을 피우는 종들이 있다. 북아프리카부터 유럽에 분포하는 플라메아복수초의 꽃잎 또한 다홍색이다. 나는 영국 런던의 한 정원에서 이 종을 처음 보았다. 그때는 미처 이들이 복수초속 식물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형태가 복수초와 똑 닮았음에도 복수초속보다는 아네모네속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간 노란 꽃잎의 복수초만 보았던 경험의 한계로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졌다. 식물 색의 영향력은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

복수초는 일본어명으로 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풀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행운의 식물로 널리 유통되고 심어지며, 한국에서도 새해가 되면 복을 기원하며 복수초 사진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복수초는 의외로 유럽에서 오랫동안 슬픔, 아픔을 의미하는 식물로 통용됐다. 1960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출간된 꽃말 책인 ‘꽃 마음’에도 복수초의 꽃말은 ‘슬픈 회상’이라 쓰여 있다.

꽃말은 그리스신화에서 유래했다. 아프로디테가 사랑하던 아도니스가 사냥을 나가 멧돼지에게 공격당해 죽었는데 그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복수초꽃이 됐다고 한다. 아프로디테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부터 복수초는 슬픔, 아픔을 뜻하는 식물이 됐다. 꽃말을 활발히 쓰던 빅토리아 시대의 문헌에도 아도니스는 슬픔, 아픔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 복수초가 동양에서는 복, 장수, 행운의 식물로 통한다니, 식물의 의미라는 건 인간의 시선과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뀌는 것이구나 싶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오랜 시간 인류에게 관심을 받아 온 복수초이지만 실상 우리가 복수초란 식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복수초는 꽃이 지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들 꽃이 다 질 즈음에는 다른 수많은 봄꽃이 피어나고, 시간이 지나 복수초꽃에 익숙해진 우리는 더이상 이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건 실상 복수초꽃이 피는 초기 단계일 뿐이다. 복수초의 삶은 꽃이 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란 꽃잎이 흰색으로 바래고, 바랜 꽃잎이 떨어지고, 꽃이 진 자리에 연두색 열매가 열리고 씨앗은 번식한다.

복수초꽃을 보았던 그 자리에 다시 찾아가 보길 바란다. 꽃이 그랬듯, 잎과 열매와 씨앗이 우리에게 또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 모를 일이다.

식물세밀화가

이미지 확대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2024-02-21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