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식물세밀화가
팜유는 ‘야자나무’(Palm)와 한자 ‘기름 유’(油)의 합성어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 식물성 기름이다. 이 기름은 라면, 과자, 마가린, 초콜릿, 아이스크림처럼 우리가 늘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샴푸, 치약, 립스틱 등 생필품에도 함유돼 있다. 미국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포장 음식의 50% 이상에 팜유가 들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팜유는 생산성이 좋아 최근 10년간 전 세계 수요가 2배 이상 증가한, 대체 불가능한 기름이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식물계를 넘어 환경, 사회적으로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이쯤에서 팜유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팜유는 야자나무과의 식물인 기름야자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이 식물의 국가 표준식물 목록상 추천 명은 ‘엘라이이스 귀네엔시스’이지만, 이 글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기름야자’란 이름을 쓰기로 한다. 식물성 기름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씨앗에서 추출한 종자유를 떠올리기 쉽지만, 팜유는 열매의 과육에서 기름을 추출한다.
우리는 기름야자의 열매에서 두 가지 형태의 기름을 얻는다. 열매 과육을 압착해 얻는 팜유 그리고 씨앗을 으깨 얻는 팜핵유. 기름야자 열매의 과육이 붉기 때문에 팜유는 붉은빛을 띠지만, 팜핵유는 일반 식용유처럼 투명한 빛을 띤다.
심은 지 3년 된 기름야자에는 열매가 다발로 달리기 시작한다. 일 년 내내 수백 개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으며 열매의 기름 함량은 30-35%이다.
팜유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다른 기름에 비해 가성비가 월등히 좋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열매를 맺는 데다 생산 비용이 적게 들고 다른 기름 작물보다 4~10배 많은 기름을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액체 상태로 유통되는 타 기름에 비해 팜유는 고체 상태로 유통할 수 있고 유통기한이 길다. 이토록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팜유는 지속 가능한 기름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오래된 열대 우림을 개간하고 태우며, 야생 동물 서식지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 지역 간 갈등과 농장 내 노동 및 인권 침해 사례도 속출한다.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팜유의 대체재를 찾을 수도 없다. 이 문제는 기름야자란 식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식물을 향한 인간의 탐욕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름야자를 대체할 다른 식물이 생길지라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 뻔하다.
해바라기의 씨앗에서 추출된 기름인 해바라기유는 향이 강하지 않으며 발연점이 높아 요리에 주로 쓰인다.
인류는 다양한 방법으로 식물을 이용해 왔다. 관상하고, 약으로 쓰고, 화장품을 만들기도 한다. 추출한 기름과 수액을 식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기름은 산업 기구나 전쟁 무기를 작동시키는 원료로도 쓰인다. 식물의 의도는 아닐지라도, 인류는 식물의 기름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기름야자, 캐나다의 어느 유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스페인의 올리브나무는 인류에게 기름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설날이 다가온다. 차례상에 오를 음식을 준비하며 우리는 또다시 대량의 기름을 찾게 될 것이다. 한 번쯤 떠올려 주길 바란다. 이 기름을 생산하기 위해 심기고 길러지는, 그리고 압착돼 버려지는 식물의 이름을.
2024-01-3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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