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상의 황금시대는 어디에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상의 황금시대는 어디에

입력 2017-02-22 21:20
수정 2017-02-2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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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평론가
정준모 미술평론가
정녕 좋은 시절이란 유한한 것일까. 연이은 테러와 폭동으로 파리의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고 루브르의 관람객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은 날 모두가 동경하는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를 떠올리며 문득 든 생각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낭만과 사랑 그리고 예술의 도시로 파리가 자리잡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끝낸 1871년부터이다.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몰려와 예술지상주의에 빠져들었고, 이런 분위기는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대까지 이어진다. 역사가들은 특히 1871년부터 1914년까지를 ‘황금시대’라 명명했다.

이 시절 파리는 경제적 풍요로 낙천적 분위기와 힘찬 시대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문화예술계에서도 데카당스한 댄디보이들이 세기말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이들은 병적인 상태를 탐하고, 기괴한 주제와 소재를 반기며, 관능적이고 과민한 자의식으로 현실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를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강조하며 자연미를 거부했다.

우디 앨런은 이 시기의 파리를 찬미하고 그리는 영화를 만든다.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다. 이 영화도 산만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큐 ‘우디 앨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처럼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더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그는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통해 행복하고 낭만적인 그때의 파리로 데려간다. 그리고 관객들의 ‘파리앓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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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황금시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주에서’(1892) 부분. 123×141㎝,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아트인스티튜드.
파리의 황금시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주에서’(1892) 부분. 123×141㎝,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아트인스티튜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오랑제리미술관을 찾은 주인공이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고 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오랑제리미술관을 찾은 주인공이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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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포스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포스터


누구에게나 황금시절은 있는 법이고 오늘보다는 지난 과거를 대부분 황금기로 여긴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오늘이 지나면 어제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언제나 사람들은 오늘은 힘들고 어렵고, 지금보단 어제가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까칠하고 섬세한 우디 앨런은 ‘옛날도 좋았지만’ 가장 ‘좋은 시절’은 ‘지금’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언 윌슨이 연기한 ‘길’이다. 소설가를 원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영화대본을 쓰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몰라 주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상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20년대를 동경한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약혼녀 ‘이네즈’는 매우 현실적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한 쌍이 파리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줄거리다. 아니 영화의 전부다.

파리의 낭만을 즐기려는 길은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이네즈를 두고 혼자 나왔다 길을 잃고 만다. 낯선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앞에 1928년 나온 멋진 구형 푸조 ‘랑듀레 184’가 나타난다. 멋진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 부르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 부부가 헤밍웨이와 잡담하는 그곳, 1920년대 파리의 한 파티장이다. 즉 황금시대의 중심인 것이다. 그 후 길은 자정만 되면 버릇처럼 1920년대로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마크 트웨인을 만나 작품 얘기를 나누고 당대 최고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며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그의 작품을 읽고 칭찬해 준다.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와 만나 현실의 연인 이네즈를 잊고 환상 속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우디 앨런이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1920년대 파리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모든 예술가들을 불러모아 연 파티가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이 시절 파리는 인간상실의 시대에 절망한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욕망과 탐욕의 시대를 벗어나 이룬 ‘해방구’였다. “선한 미국인은 죽어서 파리에 간다”고 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특히 많은 미국의 문인, 예술가들은 파리로 떠났고 일부는 그곳에서 살고 뼈를 묻을 만큼 파리는 동경의 땅이자 예술적 열정으로 가득한 땅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시대적 아픔을 치유, 아니 잊을 수 있는 낭만적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많은 카페와 바 그리고 아틀리에를 전전하는 파티는 초라했지만 매일매일 토론과 열정으로 잘 차려진 성찬이었다.

이렇듯 미국의 지식인·예술가들에게는 뜨거운 파리였지만 토박이들에게는 권태롭기 그지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울하고 염세적인, 그러나 피는 뜨거웠던 ‘파리의 황금시대’를 매우 적나라하게 그려 낸 로트렉이 스케치를 하고 있는 물랭루주의 한 바에 나타난 드가에게 고갱이 한마디 날린다. “이 시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어. 르네상스 때야말로 최고의 시대였지!”라고. 우디 앨런은 현실에서 작품을 인정받지 못해 불만인 길에게 1920년대 문화예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파리도 당시 고갱에게 불만이었던 것처럼 “지금, 여기”와의 대비를 통해 ‘현실도 꽤 괜찮은 살 만한 곳’이라는 쪽지를 슬그머니 손에 쥐여 준다.

영화 속 황금시대의 파리는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운집해 있다. 장 콕토, 투우사 벨 몬테, 모딜리아니, 계속해서 코뿔소를 외치는 달리와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사진가 만 레이, 시인 T S 엘리엇, 조세핀 베이커, 주나 반스, 코코 샤넬 등등이 마치 20세기 초를 구가한 문화예술인 인명사전의 색인처럼 등장한다. 이 시절 파리로 모였던 많은 화가들을 ‘에콜 드 파리’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는 이민 또는 난민 화가들의 천국이었다. 파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누구든 ‘톨레랑스’라는 이름으로 받아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모딜리아니, 러시아의 샤갈, 리투아니아의 수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을 피해 파리로 스며들어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시대를 거스르는 연어처럼 펄떡이며 자신의 예술혼을 불살랐다. 내일은 없다는 듯 보헤미안처럼 그날그날에 충실했다. 멜랑콜리한 정서와 반항적인 기질, 감상적인 성격과 취향이 같았던 이들은 로맨틱하고 서정적이거나 우아한 애수가 함께하는 섬세한 관능미를, 때로는 분노와 열정을 자제함이 없이 화폭에 폭발적으로 펼쳐내기도 했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카데미즘을 일거에 무너뜨린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작품의 바닥에는 불안과 고뇌라는 공통점이 도사리고 있었고, 여기에 샹송을 보태며 그들은 더욱더 충실하게 오늘을 살았다. 영화에서 포크너는 말한다. “과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디 앨런은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바로 황금시대”라고 말한다. 아마 그가 한국인이라면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을 터이다.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굴러 보자. 황금시대는 다시 올지니.
2017-02-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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