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실의 Book 받치는 삶] 우크라이나 전쟁 일기가 한국에서 처음 나온 이유/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이연실의 Book 받치는 삶] 우크라이나 전쟁 일기가 한국에서 처음 나온 이유/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입력 2022-04-24 20:34
수정 2022-04-2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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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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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4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한 엄마가 도시를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전쟁 이후 폭격이 시작되면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잠잠해지면 음식을 챙기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으나 더는 머물 수 없었다. 바로 옆집에 미사일이 떨어진 것이다. 마당, 거리, 광장은 러시아군들의 사격장이 됐다. “두려움은 아랫배를 쥐어짠다.” 그러나 탈출하기에도 이미 늦은 걸까? 택시도 운행을 멈췄다. 엄마는 간절한 마음으로 택시업체에 전화를 돌린다. 포기하려던 그때 극적으로 인근에 있던 택시기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가겠다.”

10분 후 도착하니 곧장 짐을 싸서 나와야 했다. 한데 아이들의 손목을 붙들고 떠나려는데 정작 한 사람이 같이 갈 수가 없다. 엄마의 엄마, 아이들의 할머니는 떠나지 않기로 한다. 아이들의 증조할머니, 거동이 어려운 노모가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엄마는 고향을, 어머니를, 할머니를 포탄 속에 남겨 두고 떠난다.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나이든 엄마는 딸과 손주들을 보내고 남는다. 자신보다 더 늙은 엄마를 돌보기 위해. 엄마들은 그렇게 10분 만에 생이별했다. 젊은 엄마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우크라이나의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와 처음 연락을 취한 것은 3월 18일이다. 그의 SNS를 지켜보던 한국인 팔로어가 그가 전쟁 중 남긴 그림과 글을 내게 보여 주었다. 작가와 연락이 닿은 그 순간부터 우크라이나 작가와 한국의 편집자, 번역가는 밤낮없이 소통하며 작업했다. 흔히 피 말리는 편집 일정을 ‘전쟁 같은 일정’이라고 말하는데, 이번엔 그 표현조차 사치스러웠다. 저기 한 나라에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고 수없이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통상 계약 후 최소 두 달 정도는 걸리는 완고 입수, 편집과 디자인을 15일 만에 모두 마쳤다. 내 마음속의 목표 일정은 ‘단 하루라도 빨리’였다. 우크라이나에 남편과 어머니를 남겨 두고서 두 아이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국경을 넘은 엄마 작가는 그 고통을 ‘두 손목이 잘린 것 같다’고 표현했다. 손이 절단됐는데, 그 절단된 손의 통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두고 온 어머니와 남편 생각에 가슴이 찢어진다고도 했다.

수많은 메시지를 나누며 숨 가쁘게 책을 출간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와 영상으로 만났다. 나는 이 참혹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지켜내고 기록하길 멈추지 않은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전쟁의 공포가 너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무너뜨리고 죽여 버리는 전쟁, 그 절망과 어둠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도망쳤을 뿐이라고. 여전히 그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남편과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화면 너머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의 등에 네 살 딸아이가 달려와 볼을 비비고, 기나긴 피난길의 여정에서도 그가 포기하지 않고 품은 강아지 한 마리가 왕왕 짖으며 뛰어다녔다. 언제야 이 가족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딸아이는 요즘 꽃잎을 뜯으며 ‘전쟁아 끝나라, 전쟁아 끝나라’ 말한다고 한다.

지금은 불가리아의 소도시에서 임시 난민으로 머물고 있는 작가에게 그의 모국에서 출간할 수 없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출간된 책을 발송했다. 책과 함께 한국 전통 자개소반 모양의 작은 선물도 담았다. 언젠가 이 가족이 다시 한 밥상에 모여 앉아 울지 않고 이 책을 넘겨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2022-04-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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