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차별 없는 우리를 위한 작지만 큰 노력들/이슬기 사회정책부 기자

[오늘의 눈] 차별 없는 우리를 위한 작지만 큰 노력들/이슬기 사회정책부 기자

이슬기 기자
입력 2021-12-21 20:24
수정 2021-12-2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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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사회정책부 기자
이슬기 사회정책부 기자
‘모든 노동자는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온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지난 7일 개정한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의 모범단체협약안 제8장 ‘인권’은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지난 3월,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활동가가 사망했을 때 권수정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모범단협안에 성소수자 권리 보장 조항을 넣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이 있다고 얘기할 때, 보통 그 장소는 일터죠. 금속노조는 생산직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조직인데, 우리 조직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숨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마음이 있었어요.” 19만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산별 노조 지도부인 권 부위원장의 토로다.

모범단협안이 개별 사업장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모범단협안에 기초해 단협이 진행됐을 때의 결과는 ‘센세이션’하다. 동성커플도 신혼여행을 이유로 긴 휴가를 다녀올 수 있고, 서로에 대한 돌봄휴직도 가능해진다. 에세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낸 ‘유부녀 레즈비언’ 김규진씨는 회사에 청첩장을 내고 결혼 휴가와 경조금을 받을 수 있음을 이미 보여 준 바 있다. 이러한 개인 단위 ‘각개전투’가 조직 단위로 보장되는 ‘영역 확장’이 이뤄지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14년째 국회에서 공회전 중인 데 반해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의미 있는 움직임도 지역 단위로 일어난다. 서울시의회에서는 지난 9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사회적 가족 지원조례가 발의됐다. 거대 양당의 대선 주자들이 난색을 표하며 더욱 경색된 차별금지법 논의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지역사회는 발 벗고 나섰다. 지난달 평등법 발의자이자 국회 법사위 간사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주민 500명이 연서명한 입장문을 받았다. “왜 차별금지법을 심의하지 않느냐”는 항의였다. 민주당 박홍근, 서영교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중랑구에서도 지난 13일까지 약 2주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이 진행됐다. 102명의 주민과 13개 단체가 참여한 연서명은 박·서 의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을 향한 직접적인 ‘압박’이다.

“레즈비언 커플도 결혼 휴가를 다녀올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해?”, “응, 회사가 바뀌면 되지!” 지난 20일 금속노조의 새 모범단협안에 관한 기사가 나간 뒤 친구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꼭 노조·사용자 간 단협이 아니어도 기업의 취업규칙 개정으로도 가능한,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이렇듯 성소수자도 차별 없는 평온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 나아가 살 권리는 ‘내가 디딘 땅’이 바뀌면 될 일이다. 우리 동네를 바꾸기 위한 작지만 큰 노력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국회만 각성하면 된다.
2021-12-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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