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사회2부 기자
“우리가 남이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기 위해 당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 1992년 12월 11일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훈시했던 말. 이런 논란에도 영남을 기반으로 한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 경쟁력은 2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4월 13일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했던 말. 이 회장은 닷새 후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며 사과했으나 삼성은 몇 년간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만 했다.
“내가 강남 살아 봐서 잘 아는데….” 2018년 9월 5일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 라디오에 출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에 대해 설명하다가 “국민 모두가 강남에서 살 필요는 없다”며 한 말. 여야 정치권 모두 장 실장의 발언에 대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요즘엔 말보다 글에 의한 논란이 더 잦다.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를 원망해.” 최순실의 국정농단 논란이 한창일 때 딸 정유라가 과거 SNS에 올린 글. 이 글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돼 분노의 폭발로 이어졌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서 파면됐다. “국민이 모여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 정몽준 전 의원의 아들 정모가 SNS에 올린 세월호 관련 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던 정 의원은 아들의 발언을 대신 사과했지만 고배를 마셔야 했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문제로 국가 전체가 어수선하고 국민감정에 깊은 생채기가 났지만 그보다도 LH 직원의 SNS 글에 더 화가 났다.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이직하든가.” 몰염치의 극치를 보인 이 말에 여론은 분노했다. 이후 경찰은 작성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우에 따라 해당 글 작성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한순간 얕은 감정으로 무턱대고 눌러 댄 손가락 때문에 인생의 쓰라린 맛을 보고 있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국민 괘씸죄에 대한 값을 치르고 나면 앞으로 SNS에 글을 쓸 때 착한말, 고운말, 바른말을 쓰길 권한다. ‘짐승도 한번 빠진 구덩이엔 안 빠진다’는 속담처럼 앉으나 서나 손가락 조심.
2021-03-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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