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정치부 기자
이번 총선에서는 ‘연동형 비례제’가 처음 도입된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의 험난한 과정 속에서 통과된 연동형 비례제가 이번 총선을 코미디의 장으로 만들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국회에 입성시키겠다며 만들어진 연동형 비례제의 그 취지에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왜곡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라는 거대 양당과 제대로 된 후보를 내지 못하고 그들만의 진영에 갇힌 소수정당 모두에 있다.
위성정당이라는 희대의 꼼수를 가장 먼저 기획한 것은 구 자유한국당이자 현 미래통합당이다. 통합당의 논리는 간단하다. 연동형 비례제에 반대해 왔기 때문에 선거법을 따를 수 없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의원 꿔주기’라는 기가 막힌 방법을 동원해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두 번째 칸을 차지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민망함을 느끼는 건 국민뿐이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더욱 할 말이 없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월 10일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하고 결국 정치를 장난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통합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위성정당과 다름없는 더불어시민당에 의원 꿔주기를 했고 이제는 민주당을 떠난 인사들이 만든 열린민주당과 누가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적자인지 적통 경쟁을 하고 있다. 통합당과 다른 점은 딱 하나 직접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이용했다는 것뿐이다. 이낙연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 30일 “정당제도가 다소 훼손된 것이 사실이다. 정당법과 더불어 선거법도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훼손의 주역 중 하나는 민주당이라는 점을 잊은 듯하다.
정의당·녹색당·미래당 등 소수정당은 억울할 수는 있겠지만 유권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했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도덕성과 경력 부풀리기 논란으로 감동을 주지 못했다. 녹색당과 미래당은 민주당과 연합해 원내 입성을 꿈꿨지만 뒤통수를 맞았고 정체성 논란만 남겼다.
며칠 전 총선 판세 전망에 대해 한 교수에게 묻자 “밥상을 걷어차고 싶다”는 격한 표현으로 답이 왔다. 4년에 한 번 각 정당이 차린 밥상을 유권자의 기호에 따라 골라 먹어야 하지만 이번 밥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먹고 싶은 것도 먹을 만한 것도 없기 때문에 차라리 유권자들의 투표 거부 행위로 정치권에 경각심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이런 선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학습된 참정권에 따라 투표장에 갈 것이다. 50㎝에 육박하는 긴긴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보며 차악 중의 차악을 고민해야 하는 이 현실이 괴로울 뿐이다.
jin@seoul.co.kr
2020-04-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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