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유용하 과학기자
지난 23일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통합 관리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원광연 이사장이 취임 1년만에 서울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던 이사장과 공식적으로 첫 만남인데다가 최근 출연연 자율성 부여나 과제중심시스템(PBS) 개혁 등 정부출연연구기관과 관련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많은 과학관련 취재진이 모였다.그렇지만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이들 대부분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질문에 대해 모호하고 장광설을 늘어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간담회 이후 당시 오간 이야기를 풀어낸 녹취록을 다시 봐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것은 기관장이 돌연 사퇴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이사장)“원자력연구원이 국민의 신뢰를 상당부분 잃었고…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나서야 했다. 시민단체고, 대전지역 이슈 당사자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을 제가 만나 빌다시피 했다. 시민단체들은 원자력연구원이 너무 불통이었다고 이야기하더라. (원자력연구원 원장) 취임 이후 소통이나 문제 대응이 사임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연구용 원자로와 발전용 원자로 차이에 대한 일반 시민의 공포는 과도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설명할 의무는 이사장이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과도한 공포를 전체 의견으로 보는 것 아닌가.“
(이사장)“100%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 절대로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안전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기자)“원자력연구원을 쪼개서 통폐합하거나 이전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이사장)“제2의 탄생으로 원자력연구원을 한 번 더 부활시킬 생각이다.”
(기자)“그렇다면 연구용 원자로 폐로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사장)“그렇게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이전을 비롯해서 내가 공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또 원 이사장은 뜬금없이 원자력연구원과 핵융합연구소의 통합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두 기관이 별개이기는 하지만 ‘같은 소립자 연구’이기 때문에 같은 틀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자력연구는 무거운 원자가 쪼개져 가벼운 원자로 변하는 핵분열에 관한 것이고 핵융합연구는 가벼운 원자들이 결합해 무거운 원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핵융합에너지에 관한 것들이다. 전혀 다른 반응을 기초로 한 연구를 하는 연구소를 통합하겠다는 생각인 듯 싶은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 없이 그냥 자신의 구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같은 발언들에 대해 “구체적 계획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원 이사장은 “구상단계”이며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고 답했다.
원 이사장의 발언을 꼼꼼히 뜯어보면 인사권자로서 관리기관 기관장의 사퇴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과 원자력연구원을 쪼개겠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쪼갠 뒤 핵융합연구소와 통합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또 녹취록을 보면 원자력연구원이 문제라는 생각 역시 시민단체나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가 유일한 근거일 뿐이다.
사실 연구기관의 이전이나 통폐합은 연구원 부지선정과 그에 따른 해당 지자체와의 논의, 연구자들의 인사문제 등 복잡한 사안들이 많다. 또 해당 기관의 연구원 사기 문제도 있기 때문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상위기관인 과기정통부를 넘어서 정부 전체에서 이야기돼야 할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전에는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될 문제다. 정제되지 않은 기관장의 생각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저 “비공식적으로 이야기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단다고 해서 무마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 간담회에서 발언이 문제가 되자 간담회에 참석한 서울 지역 기자들이 아닌 대전지역의 한 언론을 통해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나 신중해야 할 부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손바닥의 앞과 뒤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 홍보 장관으로 기억되겠다‘는 주무 장관이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쏟아내는 한없이 가벼운 입을 가진 기관장의 모습을 보면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이 어디로 가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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