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정치의 시대, 과학거버넌스 고민할 때/유용하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정치의 시대, 과학거버넌스 고민할 때/유용하 사회부 기자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6-12-20 21:18
수정 2016-12-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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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사회부 기자
유용하 사회부 기자
정치의 시대다.

대화술의 1원칙은 ‘처음 만난 사람과는 정치나 종교 같은 이야기는 피하고 날씨처럼 가벼운 소재로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라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최순실’ ‘국정 농단’만으로도 대화가 대동단결되는 분위기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바닥이요,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정치(政治)는 ‘원칙에 따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지금처럼 정치 담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회 각 분야에서 제대로 된 ‘정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과학계 인사와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과학계 현안보다는 최순실 국정 농단을 비롯한 작금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한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이야기 끝 무렵 이 인사는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차기 정부가 조기 등판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은데 미래창조과학부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어왔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창조경제를 담당해온 미래부의 존폐는 과학계는 물론 ICT계에서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의 거버넌스로는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감안하면 차기 정부에서 미래부의 변화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과학계 인사 누구나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전체의 목소리로 터져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가치 중립적이고 정치와는 무관하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과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치의 시대에 과학기술계는 정치 담론이 없는 이상한 상황이 되고 있다.

‘1984’ ‘동물농장’의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정치적이란 용어는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보려는 욕망을 말한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라고 말했다.

과학계도 마찬가지다. 현재처럼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지원을 연구성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회’가 과학기술인들의 이상이라면 연구실을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과학 거버넌스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연구비를 더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회를 위하는 길’과 뒷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진정 고민한다면 지금처럼 행정가 중심이 아닌 과학기술인이 중심이 된 과학기술 거버넌스부터 만들어야 한다.

현장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어설프게 외국 사례를 들먹이는 얼치기 정치인과 행정가들, 그리고 한자리 차지해 보겠다는 욕심 많은 과학자들의 손에 과학기술계가 또다시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누군가 해주겠지’라는 생각에 과학기술자들이 손 놓고 있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과학기술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고 다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합집산된 전철을 밟을 가능성만 커질 뿐이다.

edmondy@seoul.co.kr
2016-12-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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