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경제부총리 후보자로 지명받은 2일 저녁 집 앞에 모인 기자들에게 공무원의 영혼에 대해 얘기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연달아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경제정책국장을 맡았던 자신을 두고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아냥이 있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정책을 뒤집는 건 소신 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이었다.
임 후보자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무원도 영혼이 있다.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영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민의로 여기고 따르는 게 마땅하다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말이 된다. 과연 그럴까. 국정을 쥐락펴락한 최순실 일가의 행태를 생각하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검찰에 나온 대통령의 수족들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씨에게 연설문과 같은 청와대 기밀문서를 보냈다고 했다. ‘왕수석’이 별명인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도 재벌 기업을 움직여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도록 한 것은 대통령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니었다고 치자. 그럼 세종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영혼이 있다 할 수 있을까. ‘VIP(대통령) 관심사항’이라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예산을 고스란히 반영해 주거나 청와대가 내려보낸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토대로 연예인의 방송 출연 등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보고서도 말이다. 대통령이 시켜서 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최씨와 그 측근의 잇속을 챙기고 분풀이를 해 주는 일이었던 셈이다.
독일 나치 정권에서 유대인 학살의 실무를 맡았던 아이히만은 종전 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서 “상관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 내 잘못은 없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그의 재판 과정을 기록하고 사유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惡)이라고 결론지었다.
제도적으로 큰 탈 없이 잘 굴러 왔던 관료사회는 ‘최순실 버그’를 계기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결국 영혼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다. 상관의 지시를 기계적으로 따라선 곤란하다. 잘못된 정책이라면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튀지 말고 말썽도 일으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강한 공무원 집단에 쉽게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리더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책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대통령과 장관은 공무원의 영혼을 불러내는 사람”이라고 썼다. “집권 세력과 장관이 공무원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무원은 자기 영혼을 감추지만 그들이 국민을 책임지는 자세로 사심 없이 일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공무원은 자기 영혼을 드러낸다”고 했다.
국정이 진공 상태라는 지금, 공직 기강을 스스로 추슬러야 하는 공무원들이 곱씹어 볼 말이다.
dallan@seoul.co.kr
오달란 경제정책부 기자
임 후보자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공무원도 영혼이 있다.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영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민의로 여기고 따르는 게 마땅하다는 뜻이다. 뒤집어 보면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말이 된다. 과연 그럴까. 국정을 쥐락펴락한 최순실 일가의 행태를 생각하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검찰에 나온 대통령의 수족들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씨에게 연설문과 같은 청와대 기밀문서를 보냈다고 했다. ‘왕수석’이 별명인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도 재벌 기업을 움직여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도록 한 것은 대통령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니었다고 치자. 그럼 세종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영혼이 있다 할 수 있을까. ‘VIP(대통령) 관심사항’이라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예산을 고스란히 반영해 주거나 청와대가 내려보낸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토대로 연예인의 방송 출연 등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보고서도 말이다. 대통령이 시켜서 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최씨와 그 측근의 잇속을 챙기고 분풀이를 해 주는 일이었던 셈이다.
독일 나치 정권에서 유대인 학살의 실무를 맡았던 아이히만은 종전 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공개 재판에서 “상관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 내 잘못은 없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그의 재판 과정을 기록하고 사유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惡)이라고 결론지었다.
제도적으로 큰 탈 없이 잘 굴러 왔던 관료사회는 ‘최순실 버그’를 계기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결국 영혼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다. 상관의 지시를 기계적으로 따라선 곤란하다. 잘못된 정책이라면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튀지 말고 말썽도 일으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강한 공무원 집단에 쉽게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리더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책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대통령과 장관은 공무원의 영혼을 불러내는 사람”이라고 썼다. “집권 세력과 장관이 공무원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무원은 자기 영혼을 감추지만 그들이 국민을 책임지는 자세로 사심 없이 일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공무원은 자기 영혼을 드러낸다”고 했다.
국정이 진공 상태라는 지금, 공직 기강을 스스로 추슬러야 하는 공무원들이 곱씹어 볼 말이다.
dallan@seoul.co.kr
2016-11-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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