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멀고 먼 사법부의 양성평등/서유미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멀고 먼 사법부의 양성평등/서유미 사회부 기자

서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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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7-05 17:46
수정 2016-07-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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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사회부 기자
서유미 사회부 기자
이인복 대법관의 퇴임을 앞두고 새 대법관으로 각계에서 천거된 후보 34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그런데 이 가운데 여성은 이은애(50·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단 한 명뿐이었다. 수십 명의 후보 중에서 여성 후보가 한 명에 불과한 것은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민일영 대법관 후임으로 법조인 27명이 천거됐으나 여성은 민유숙(51·18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뿐이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2004년 사법사상 처음으로 금녀의 벽을 허물었으나, 그 뒤로도 여성 대법관은 늘 극소수였다. 지금 대법원도 대법관 14명 중 여성은 2명뿐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대법관 후보 피천거인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여성 대법관이 적은 이유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됐다. 애초에 피천거인이 되는 여성 법조인이 적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제청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새로운 제도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매번 비슷한 피천거인 명단을 받아 본 결과 대법관의 다양한 구성을 위해서는 천거 과정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법관 후보자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대법관 후보 자격이 되는 여성 법조인의 숫자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격인 그룹의 수가 적기 때문에 후보로 올라가는 비율도 적고, 실제 대법관이 되는 여성도 적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성 법조인 숫자’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33대1’이라는 숫자 뒤에는 지금의 50대 여성들이 유년기를 겪었던 시절의 사회상이 있다. 2016년 대법관 후보 피천거인 중에서 여성이 적은 가장 큰 이유는 고등교육의 기회가 남성과 여성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사회적 현실이다. 그때의 젊은 여성들은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사법부라는 명예로운 전문직에 도전하도록 격려받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여성 대법관의 비율도 자연스럽게 높아질까. 여성 법관의 비율은 1990년대 초반까지 3~4%에 그치다가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법관 4명 중 1명은 여성이다. 그러나 여성 대법관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낙관론이다. 많은 여성 법조인들이 직업으로서의 책무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 육아에 힘을 쏟아야 한다. 많은 여성 판검사들이 1~2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육아의 책임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에 눌려 공직자로서의 길을 포기할 생각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공평한 기회를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양성평등’을 고민하는 사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법관은 수년간의 격무를 이겨 내고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판결에 골몰한다. 지역, 학력, 성별 등을 기준으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보다 대법관의 역할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후보가 임명돼야 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여성 법조인들이 대법관의 역할에 걸맞은 능력을 기르도록 노력하는 데 구애받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seoym@seoul.co.kr
2016-07-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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