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그들의 어긋난 학교 사랑/장형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그들의 어긋난 학교 사랑/장형우 사회부 기자

장형우 기자
장형우 기자
입력 2015-09-13 23:12
수정 2015-09-1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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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우 경제정책부 기자
장형우 경제정책부 기자
지금은 ‘입시학원’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자율형사립고의 당초 설립 취지는 ‘입시 위주에서 벗어나 교육의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학 간판 하나로 인간을 평가하는 학벌주의 사회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학교 운영 비용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해야 하는 자사고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럴듯한 입시 결과, 이른바 ‘입결’을 내야 한다.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은 전국 21개 자사고의 국어·영어·수학 편성 비율이 권장 기준인 50%를 크게 웃도는 이유다.

하지만 모든 자사고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전국 단위 자사고들은 아직도 당초 설립 취지를 잘 지켜 가고 있다.

입결이 좋은 자사고 교실에서 성적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학교들은 고교 시절 학생들에게 예술 및 체육 분야에서 1인 1특기를 키우도록 하고 개개인의 적성과 흥미, 소질을 키울 수 있는 여러 활동을 이끌고 지원한다. 예절 및 인성 교육도 잘 이뤄진다. 즐겁게 생활하고 ‘좋은 대학’도 많이 가니까 재학생 및 졸업생의 만족도도 높다.

14일부터 특별감사를 받는 서울 은평구의 하나고등학교도 그런 자사고 중 하나다. 일반고에 비해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귀족 학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학기 중에는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사교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등록금을 일반고와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확하게는 일반고 학생의 등록금과 학기 중 들어가는 사교육비를 더한 것과 비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하나고 등록금이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여기다 입결도 훌륭하니 학부모들은 자녀를 하나고에 보내고 싶어 한다.

힘들게 자녀를 하나고에 보냈는데, 잘 다니고 있는데, 1년 뒤면 ‘명문대’에 갈 텐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자녀의 담임교사가 학교의 비리 의혹을 폭로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위권 대학을 가려면 학생부 종합전형을 노려야 하는데,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면 하나고의 등급이 밀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내부 고발자인 담임이 자녀의 학생부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그래서 담임의 해임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누구는 해임 요구안에 서명했는데 누구는 안 했네’라고 점고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전경원 교사는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행한 일로 학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전 교사는 지난 11일 담임 교체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학교에 성적 조작 비리 등이 생기면 학부모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전 교사는 순진했다. 학부모에게 하나고는 ‘내 자녀의 명문대 진학의 발판’일 때만 사랑할 가치가 있다는 걸 간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 중 일부는 부모의 소원대로 명문대에 진학한 몇 년 뒤 ‘취업의 발판인 대학’의 명예가 실추될까 봐 검찰에 불려가는 비리 이사장을 옹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zangzak@seoul.co.kr

2015-09-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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