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산업부 기자
정부 출연 연구소 책임연구원인 A박사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10년 넘게 연구하고 있는 분야라며 ‘확실한 자문’을 약속한 터였다. A박사는 “보기 ㄱ은 항상 맞는 게 아니기 때문에 ㄱ, ㄴ이 옳다고 한 4번은 답이 될 수 없다”면서 “과학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확인을 위해 문의한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역시 같은 이유로 2번을 답으로 지목했다. 반면 일선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들은 “고교 과정에서는 ㄱ은 맞는 설명”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유명 강사는 과학자들의 의견을 들려주자 “어쨌든 교과서대로 하면 4번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치러진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을 둘러싼 출제 오류 논란이 일파만파다. 평가원 홈페이지에는 이 문항에 대해 400건이 넘는 이의 제기가 올라왔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야행성 대장균’ 관련 실험을 소재로 한 해당 문항에 대해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프로모터’나 ‘조절 유전자’ 등 문제 풀이에 필요한 복잡한 내용을 빼고 얘기하면 보기 중에 ‘고교 교과서에서는 맞지만 과학적으로는 틀린 사실’이 포함돼 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수능의 출제 범위는 고교 교육과정이다.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학생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나무랄 수는 없다. 설사 학생들이 몰랐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과학적으로 틀린 답을 ‘교과서’에 근거해 ‘맞는 답’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입시 업체들의 가채점 결과 이 문제에서 2번을 고른 수험생은 생명과학Ⅱ 선택자 3만 3221명 중 74%에 이른다. 과학적으로 맞는 답을 썼다는 이유로 ‘오답처리’될 위기에 처한 수험생이 2만 5000명에 이른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쉬운 수능으로 실수가 당락을 가르는 상황에서 한 문제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는 문제를 출제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시험은 이미 치러졌고, 공은 평가원으로 넘어갔다. 평가원은 지난해 수능에서 세계지리 출제 오류 문제가 불거지자 “교과 과정에서는 제대로 된 문제”라며 이의 제기를 무시했다. 결국 그 피해는 1만 8000여명의 수험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24일로 예정된 최종 정답 발표에서 평가원이 지난해의 잘못된 선택을 답습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kitsch@seoul.co.kr
2014-11-1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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