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Out] 기본소득, 두려워할 필요 없는 혁신적 복지제도/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

[In&Out] 기본소득, 두려워할 필요 없는 혁신적 복지제도/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

입력 2018-02-18 22:48
수정 2018-02-1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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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
최한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
만약 정부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조건 없는 돈을 지급한다면 이들의 행동은 어떻게 바뀔까? 이 물음을 위한 실험이 작년 핀란드에서 시작됐다. 2000명의 실업자를 상대로 월 70만원의 현금 급여를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지급한 것이다. 핀란드 정부의 이러한 대담한 시도에 관심이 쏟아지면서 우리도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몇 가지 이유로 기본소득에 부정적이다. 첫째, 기본소득이 근로 유인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의 경제학자들은 멕시코와 필리핀 등 6개 개발도상국가에서 진행된 현금이전성 사회부조가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감소시키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선진국도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1982년부터 해마다 1000~2000달러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한 미국 알래스카의 경우다. 최근 연구는 기본소득 지급 후 알래스카의 고용률이 다른 주에 비해 낮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줬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빈곤층에 현금을 줄 경우 술과 담배 같은 재화에 낭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전 세계 현금성 지원사업을 조사한 세계은행의 연구는 빈곤층이 현금을 받은 후 담배나 술에 대한 소비를 늘리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오히려 현물 급여를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 급여로 대체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2006~16년 저출산 예산은 80조 2000억원이었는데 2016년 합계출산율은 1.3명 수준이었다. 이를 그 기간의 출생아 수 499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약 1600만원의 예산이 사용된 셈이다. 사람들은 차라리 가구에 1600만원의 출산수당을 줬다면 출산율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할 뿐 성과가 의심스러운 잡다한 사업보다 불필요한 행정비용 없이 수혜자의 만족도가 높은 현금 이전에 대한 선호는 자연스럽게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요인은 예산이다.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월 2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120조원이 필요하다. 같은 해 정부 예산이 375조원이고 보건·복지·고용 예산이 115조 7000억원임을 생각하면 기본소득 사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면적 도입보다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정책 실험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특히 소득이 낮으나 정부의 지원이 미흡한 청년 계층을 대상으로 한 청년수당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핀란드처럼 실험을 위한 법률 제정을 고려해 봄직하다.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데 집단마다 다른 방식의 지급이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성과평가에 필요한 데이터는 어떻게 수집·관리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국회가 정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지역 단위의 실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 실험은 비용뿐 아니라 제도 운영의 경직성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자치단체 차원에서 실험하되 설계와 예산, 평가에서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정책 결정자들은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면 게을러질 것이라는 생각에 현금 수당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 수당 지급이 빈곤 문제를 다루는 가장 효과적 방법 중 하나이며, 따라서 현금 수당을 받는 ‘게으른 빈곤층’의 고정관념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사고와 대담한 도전이 필요한 것은 개인이나 기업만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기본소득의 혁신성을 인식하고 보다 열린 자세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2018-02-1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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