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위원
국민의 정부 시절 국가사무의 지방이양으로 시작된 지방분권 논의는 참여정부 시절 ‘지방분권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지며 행정기관의 지방이전 정책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국세와 지방세의 합리적 조정이나 지방세의 신세원 확대, 국고보조금 정비 등은 이미 참여정부가 2004년 11월 발표한 지방분권추진 종합계획에도 담겨 있던 내용이다. 현재 지방분권 논의가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내용이나 방법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기관들의 뻔한 밥그릇·기득권 다툼이 엉뚱한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을 대립시키는 논리다. 현재 기재부는 행안부가 내놓은 방식대로 지방소비세율을 현행 부가가치세의 11%에서 20%로 높이는 등 국세를 줄이고 지방세 비중을 높이자는 입장이지만 기재부는 그럴 경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재정격차가 커져서 균형발전에 저해된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논란은 작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바 있는 지방재정개혁방안 추진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중앙정부의 노력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향상되었으나 오히려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격차는 늘어났다면서 시·도 조정교부금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섰다. 일년 사이에 당시 행자부의 논리가 현재의 기재부 논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재정분권과 균형발전의 논리가 대립하면서 논의를 제자리걸음하도록 만드는 것은 유사하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재정분권을 둘러싼 갈등은 전혀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지방분권이나 그것의 핵심 내용으로서 재정분권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이다. 재정분권을 한다고 자동으로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균형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지방분권과 그 내용으로서 재정분권이 필요한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재 지방분권은 잘해 봐야 중앙정부 차원에서 벌어지는 영역 다툼과 중앙·지방 간 권한 다툼으로 보인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다른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지방자치 효능을 맛보게 된 것은 길게 잡아야 2010년 지방선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서 더 나아가 지방분권이 곧 지자체의 자치를 넘어서 시민들의 자치로 확대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돈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그 지자체가 유능할 때나 안타까운 것이다. 무능하다면 오히려 예산낭비를 예방할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다시 지방분권은 지방자치의 부분이고, 지방자치는 궁극적으로 시민들과 권한을 나누는 시민분권으로 나가야 한다는 목적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이는 기재부와 행안부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걱정을 대신해 주는 시대는 지났다. 지자체를 직접 통제·감시하기보다는 지역민들이 권한을 분배해 직접 지자체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분권 없는 지방분권 논란은 기관들의 영역 확보를 위한 싸움으로 보일 뿐이고 정작 시민들을 관중석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2017-12-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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