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상 한국예술종합대 교수·피아니스트
참 맞는 말이다. 우리가 성취다운 성취를 맛본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시간의 압박이 존재했다. 어렸을 때는 학예회, 고등학생 시절엔 대학 입시 준비, 사회에 나와서는 입사 면접 준비, 입사 후에 프레젠테이션. 이런 일들을 앞두고 만족할 만큼 완벽하고 여유 있게 준비를 해서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는 상황이 과연 우리에게 있긴 했을까? 그러면서도 꾸준히 실력을 천천히 쌓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들인 완벽히 준비된 상태를 허황되게 꿈꾼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걸 해내는 이에게서 나오는 여유를 동경한다.
현대인들 대부분은 시간결핍증후군에 시달린다. 저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착각일 수도, 핑계일 수도 있다. 시간이 모자라고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건 그래도 지금 하는 일과 삶에 집중하고 이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냥 정신없이 바쁜 것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시간이 충분한 가운데 마음만 바쁘게 살 수 있는가 하면, 시간이 모자라지만 계획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힘과 더불어 에너지의 중요한 함수다. 분명 많이 먹으면 힘이 나고 적게 먹으면 힘이 달릴 텐데, 오히려 배부른 상태에서는 능률이 오르지 않고 약간 허기진 상태에서 최고의 능률을 발휘하게 된다. 시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배부를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면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적 압박이 있을 때 오히려 보란 듯이 해내는 인간은 영험하면서도 게으른 동물이다.
신께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씩의 시간을 주셨는데, 시간을 인위적으로 쪼개서 ‘투 두 리스트’(to do list)에 빼곡히 할 일들을 적어 스스로를 압박하면 능률과 성취가 더해진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24시간을 부여받았다는 그 전제가 사실은 우리를 나태하게 하고 쳇바퀴 돌아가는 삶으로 이끌고 있다.
분명한 건 신은 우리에게 24시간을 분배한 적이 없다. 해와 달을 만들어 주고 식물과 동물을 사냥하고 수렵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사냥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언제 사냥감이 눈앞을 스쳐 지나갈지 모른다. 아니면 인간 스스로가 맹수의 사냥감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 언제가 될지 모르니 미리 계획을 세워 놓기는 하지만 일이 닥치면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간이 아니라 긴장과 몰입, 그로부터 나오는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일 테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사계절이 지나며 언제나 다르니, 해가 지기 전에 밭을 갈고, 겨울이 오기 전에 추수를 해야 하는 유동적인 압박감은 농경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냉장고에 저장할 수 있고, 비닐하우스로 겨울재배도 가능해지니 언제나 경작을 할 수 있고 섭취할 수 있다는 여유가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은 냉장고에 저장할 수 없다. 화살처럼 해와 달도 그들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거사를 앞두고 “내게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언제나 가지게 된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대가가 돼있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공연이 내일이고 마감이 내일이어도 상황은 매한가지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모호하고 착한 학습보다는,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의식해 한계에 부딪혀서 일을 달성시키고야 마는 인간이 지닌 잠재력에 한 표를 던진다.
2021-06-17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