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미래는 모든 것의 가능성/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미래는 모든 것의 가능성/김이설 소설가

입력 2020-08-26 16:58
수정 2020-08-27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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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 소설가
김이설 소설가
작은 아이의 얼굴이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얼굴 전체가 빨개지고, 매끄러웠던 피부가 온통 우둘투둘하게 변했다. 가려워서 밤새 잠을 설칠 정도까지 심각해졌다. 병원에서는 마스크 때문이라고 했다. 등교수업을 하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 더위와 땀 때문에 더 악화하는 모양이었다. 마스크 테두리를 따라 흉터처럼 검붉은 얼룩이 생겨도 마스크를 벗으라 말할 수가 없는 현실이다.

그렇게 주의를 주고 권고했는데도 집회와 예배에 참석하고,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은 이들이, 방역 지침을 따르지 않은 무수한 그들이 이렇게 만든 탓이다. 개인 위생도 철저히 지키고, 외출도 삼가고, 사회적 거리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지켜 온 이들에게는 그래서 다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지금의 상황이 억울하기만 하다. 약속을 잘 지킨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모두가 세상 탓 같고,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어른들 탓 같고, 그러니 결국 모두 내 탓이 돼 버리는 현실이 무참하다.

감염병이 창궐한 세상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현재의 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는 회귀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이동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마스크 없는 아침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매일 등교하는 학교 생활이 얼마나 건강했는지, 거리낌 없이 외식을 하고, 눈치 보지 않으며 마트를 활보하며, 손쉽게 공원을 걷는 일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절실히 알겠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정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 전혀 모르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시인이자 소설가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불안의 책’에서 “나는 항상 현재에 산다. 미래는 알지 못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모든 것의 가능성이라서 부담스럽고,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라 부담스럽다”고 썼다. 미래는 모든 것의 가능성이라는 말이 긍정적으로 해석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으나, 부정적 상황으로 벌어진다고 상상해 보니 그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장 거리두기 3단계로 격상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쁜 상상이 현실이 될까 무섭고, 비관론이 사실이 될까 두렵다.

매일 재난문자로 확진자 소식과 그들의 동선을 전달한다. 경각심을 일깨우는 문자도 수시로 온다. 멀리에 있는 줄 알았던 확진자가 다른 시에 살고 있는 부모님 아파트 동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단지에서, 아이의 학원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예약했던 병원의 담당의는 자가격리에 들어가 2주간 진료를 볼 수 없다 하고, 같은 카페에 앉아 있다 밀접 접촉자로 확진을 받은 아이의 친구 엄마 소식도 들린다. 어쩐지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가 힘들다. 무엇보다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운이 없어서, 우연히 나도 모르게 확진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 최소한의 방법이 전부인 셈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건 또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한번 미래는 모든 것의 가능성이라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희망을 노래하며 웃을 수도, 절망을 걱정하며 울 수도 없다. 모든 것의 가능성이란 모든 것들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2020-08-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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