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힐링을 넘어 창조로/이애경 작사가

[문화마당] 힐링을 넘어 창조로/이애경 작사가

입력 2015-02-11 18:04
수정 2015-02-12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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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자기에게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이애경 작사가
이애경 작사가
얼마 전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미술을 쉽게 풀이해 주는 클래스에 다녀왔다. 미술 거장들의 그림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화가인 강사님이 고흐의 자화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고흐의 자화상은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고갱과 크게 다투고 난 뒤 자신의 귀를 자르고 나서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이다. ‘키스’로 유명한 클림트도 그렇고 대부분의 화가는 사건이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물론 평상시의 풍경이나 생활을 그리기도 하지만 이별이나 다툼, 죽음 등 감정을 흔들 정도의 크고 작은 충격이 일어났을 때 창조 에너지가 솟아나거나 혹은 끌어내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힘든 사건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시기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과 치열한 싸움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고 그저 삶을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을 잠잠하게 하고 치열한 감정들을 밖으로 적극적으로 끄집어냄으로써 굴속에 갇혀 있지 않고 스스로 인생에 대해 이해하고 마음의 정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에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자기의 자화상을 그린 고흐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가 정말 대단한 화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그들의 삶을 뒤흔든 사건들 속에서 그 감정을 오롯이 담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힐링을 넘어선 창조력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생에 사건이 일어나면 눈물을 흘리고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술로 위안을 삼거나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고 생각하며 ‘힐링’이 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린다. 그러나 위대한 화가들은 달랐다. 그들은 그 아픔들을 ‘창조’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기억되는 사람들은 평탄한 인생을 보내고, 별일 없이 살다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폭풍 같은 인생을 겪으면서도 그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고뇌의 흔적, 아픔의 감정을 오롯이 담은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폴 포츠 같은 가수가 탄생할 수 있었고, 큰 장애를 갖고 태어나거나 인생에 엄청난 일을 겪고 난 뒤 써 내려간 자서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인생에는 굴곡이 따른다. 작은 파도도 있고 큰 파도도 있겠지만, 그 파도를 어떻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방향과 내뿜는 향기가 바뀐다. 어려움을 이겨 내고 다른 무언가를 창조하는 에너지로 사용하는 삶은 언제나 값지고 또 위대하다.

요새 여성들 사이에서 뜨개질, 컬러링북, 인형 만들기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지치고 힘든 삶의 힐링을 위해 무언가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하는 에너지로 변화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창조된 무언가를 통해 언젠가는 내 주위의 사람들 혹은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을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2015-02-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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