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관계와 경계/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관계와 경계/김재원 KBS 아나운서

입력 2014-10-16 00:00
수정 2014-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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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
김재원 KBS 아나운서
부모님 사는 곳은 끓는 국을 식지 않게 갖다 드릴 수 있는 거리라면 딱 좋다는 말이 있다. 장인, 장모님이 위층에 사셨다. 10년 넘게 가까이 모시고 살았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장인, 장모님이 예고 없이 우리 집에 내려오시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나는 문득 시간이 나면 연락 없이 마실을 간다. 두 분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신다. 어쩌면 여염집 사위보다 경계 없이 처가를 드나들었을 게다. 그래서 관계가 더 좋았다. 그러던 두 분이 지난여름 이사를 가셨다. 이번에는 아이 많은 처제네 아랫집이다. 멀어진 탓에 아무래도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경계가 멀어지다 보니 관계도 멀어지나 싶어 죄송스럽기만 하다.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한창이다.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 제한에 반발해서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된 이 시위는 경찰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 ‘우산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과 홍콩은 관계 유지를 위해 여러모로 애썼다. 오래된 중국과 일찍이 서구화된 홍콩의 경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계속되는 시위로 거리 주변 상인과의 마찰도 적지 않단다. 결국 시위도 경계를 어떻게 지키느냐가 문제였다.

얼마 전 KBS ‘세계는 지금’에서 본 카자흐스탄은 대표적인 종교 공존 국가다. 이슬람교 이맘과 가톨릭 신부가 다른 의식, 다른 믿음,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도 친구가 된다. 130여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이슬람 모스크, 가톨릭 성당, 러시아 정교회, 유대교 회당까지 종교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정말 친하게 지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는 종교국이라는 독특한 행정기구도 있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종교대회라는 국제회의를 개최하며 전 세계 종교화합과 평화공존의 모델로 나서고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런 대회를 통해 세계가 국제분쟁을 막는 새로운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 포괄주의 등 종교학적 논란을 떠나 이 나라가 종교의 경계를 잘 지키며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경계를 지키기도 역시 쉽지 않다. 20년 가까이 키워 온 내 자식이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면서 적절한 진로 지도를 하기는 참 어려운 아빠의 과제다. 아이들이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지켜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아들은 아들의 나라에 살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나라에 산다. 심지어 아내는 아내의 나라와 어머니의 나라에 발을 걸치고 산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의 마음을 잘 다독이고 가정의 평화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녀와의 경계를 잘 지켰을 때이리라.

열풍을 일으켰던 ‘왔다 장보리’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비단이의 명연기를 볼 수 없음이 아쉽지만 이런 저런 논란을 넘어 관계와 경계를 생각해 보기 좋은 드라마였다. 연민정은 거짓으로 경계를 넘어서 관계를 깨뜨렸고, 장보리는 진심으로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여 비단이와 가족이 됐다. 관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경계는 영원한 숙제다.

우리나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이 대거 사이버 망명을 하고 있단다. 대화 앱 사용자들이 해외에 기반을 둔 앱 회사로 이동, 가입하고 있다. 최근 고위공직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대화 앱에 퍼뜨리는 자를 고소하겠다는 방침과 관련된 일이다. 제발 국민 사생활의 경계는 지켜주길 바란다. 그래야 관계가 좋아지지 않을까. 참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14-10-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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