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에게 특정한 장소가 사랑의 대상이자 기쁨의 원천이 되는 것을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애착)라고 한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의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와 ‘사랑’을 의미하는 ‘philia’가 결합된 것으로, 중국 출신의 지리학자 이 푸 투안이 처음 사용했다.
장소애착은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그곳에서 경험하고 느낀 모든 것이 개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가 있었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바르비종 주변의 샤이 들판이다.
파리에서 살던 밀레는 콜레라의 공포로 도시가 큰 혼란에 빠지자 1849년 파리와 가깝고 물가와 집값이 싸며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1875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흙냄새를 맡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밀레는 샤이 들판에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했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의 손길, 땀 흘리며 밭을 가는 모습, 풍요로운 수확의 기쁨까지 본능적으로 땅을 사랑하는 농부들에게서 노동의 숭고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했다.
샤이 들판은 밀레가 예술적 영감과 정체성을 찾은 곳이자 농부들의 일상과 자연의 순환을 깊이 관찰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는 이곳에서 농부들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했으며, 그런 감정을 ‘이삭 줍는 여인들’, ‘양치는 소녀’, ‘씨 뿌리는 사람’ 등 대표작들로 승화시켰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밀레는 샤이 들판에서 감자를 캐던 농부 부부가 저녁 종소리에 맞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가난한 농민 부부가 힘든 노동 속에서도 삶에 감사하며 신께 기도하는 모습이 숭고하게 다가왔다. 밀레는 이 감동적인 순간을 화폭에 담았고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만종’이다. 이런 그림에 관한 배경 설명을 듣고 작품을 감상하면 밀레의 시선을 따라 샤이 들판에 서서 농부 부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밀레는 샤이 들판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밀레에게 ‘만종’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선물했다.
밀레와 샤이 들판, ‘만종’의 연결 고리는 장소애착이 예술가의 삶과 창조성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2024-10-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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