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레이, 리 밀러의 솔라리스 초상, 1929년경, 펜로즈 컬렉션.
레이와 밀러는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교사와 학생, 연인, 창조적 파트너로서 서로의 창작 활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레이는 사진과 영화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었고, 밀러는 패션모델에서 사진가로 전향하려는 시점에 있었다. 레이는 아름다운 밀러를 모델이자 조수로 삼아 실험적인 사진 작품을 제작했고 밀러는 레이의 예술철학을 이해하고 그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재능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예술적 성장을 이끌어 냈다.
어느 날 밀러가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던 중 실수로 불을 켜면서 현상액에 담겨 있던 사진지가 갑작스럽게 빛에 노출됐다. 사소한 실수는 현상 중이던 사진의 일부 색조가 반전돼 꿈과 같은 이미지가 나타나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밀러는 반전 이미지가 가져다준 신비한 효과에 매료됐다.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반전 이미지는 무의식의 탐구와 꿈의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가졌던 초현실주의 예술의 핵심 개념과 깊이 연결됐기 때문이다.
밀러는 우연한 발견을 레이에게 알렸다. 이후 두 사람은 사진 인화 과정 중 의도적으로 빛을 노출시켜 이미지의 색조가 반전되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실험을 거쳐 솔라리제이션 기술을 개발했다. 혁신적 기술 개발은 단순한 사진 기법이 아닌 두 예술가의 사랑과 예술 협력의 결정체였다.
실수로 시작된 우연한 발견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예술적 열정을 통해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밀러의 실수와 레이의 실험정신이 결합된 솔라리제이션 기술은 20세기 초현실주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예술가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해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고 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레이가 솔라리제이션 기술로 탄생시킨 아름다운 밀러의 측면 초상사진 작품은 사랑과 예술, 우연과 혁신, 창의성과 협력을 상징하는 증거물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2024-04-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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