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생일, 1915,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두 사람이 결혼한 1915년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신혼부부의 흥분과 열정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샤갈은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냥 창문을 열어 두기만 했다. 그러면 그녀가 하늘의 푸른 공기와 사랑, 꽃과 함께 스며들어 왔다. 흰색 혹은 검정 드레스로 차려입은 그녀가 내 그림을 인도하며 캔버스 위로 날아다녔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30년을 함께 살며 샤갈의 예술적 열정과 창조성을 자극하던 벨라가 1944년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때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사별의 고통을 겪던 화가는 우울증에 빠져 캔버스를 벽을 향해 돌려놓고 난생처음 붓을 놓았다. 그는 딸 이다의 아파트 바닥에서 울부짖으며 죽기를 애원했다. 샤갈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구성한 세 가지 요소는 ‘유대주의, 러시아, 사랑’이다. 러시아 벨라루스의 비텝스크 하시디크 유대인 출신인 샤갈이 타국에서 망명자로 살면서 차별의 설움을 겪을 때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준 사람이 벨라였다.
같은 유대인이자 고향이 같은 벨라는 유대인 공동체의 전통, 러시아 문화와 정서가 구체화된 존재였다. 벨라와의 깊은 사랑은 샤갈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꿈과 사랑을 작품에 구현하는 데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샤갈은 “예술은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 삶도 예술도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사랑의 감정 표현을 강조했다.
벨라가 존재했기에 샤갈은 ‘사랑의 화가’로 불릴 수 있었다.
2023-05-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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