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 ‘생트빅투아르산’, 1904년
(70x92㎝, 필라델피아미술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70x92㎝, 필라델피아미술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사생활도 실패였다. 세잔은 서른 살에 자신의 모델 오르탕스 피케와 같이 살기 시작했으나 완고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끊을까 두려워 결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죽기 몇 달 전 마음을 돌려 며느리를 받아들였다. 세잔과 오르탕스의 아들은 열네 살이 돼 있었고, 부부 사이에는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산을 상속받자 오르탕스는 아들 공부를 핑계 삼아 파리로 가 버렸다.
사십대 후반이 된 세잔은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생트빅투아르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1901년에는 아예 산기슭으로 스튜디오를 옮기고 매일 2㎞ 정도 걸어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햇빛이 만드는 찰나의 이미지에 집중하는 인상주의를 포기했다. 자연에는 영속하는 부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고 화가는 그것을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모사의 대상이 아니라 색채와 조형적인 균형을 통해 해석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의 그림에서 전통적인 원근법은 사라지고 색의 조각들이 겹치고 엇갈리면서 공간을 재편한다. 생트빅투아르산은 저 멀리 있는가? 바로 눈앞에 있는가? 세잔은 인상주의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사물의 재현이라는 미술의 관습 자체를 뒤흔들었다. 당뇨병과 고독, 이대로 영영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세잔은 현대미술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혔다. 실패가 그를 만든 것이다.
2021-12-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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