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림의 제목/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림의 제목/미술평론가

입력 2021-09-28 17:34
수정 2021-09-29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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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년 (50×65㎝, 마르모탕미술관, 프랑스 파리)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년
(50×65㎝, 마르모탕미술관, 프랑스 파리)
전근대 시대의 그림은 제목이 없었다. 그림은 주문 제작됐고 완성된 작품이 인도되면 외부에 공개될 일이 없었으므로 제목이 불필요했다. 귀족이나 부자들의 유산 목록을 작성했던 비서나 공증인은 장부에 그림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 넣어 식별할 수 있게 했다.

그림에 제목을 붙이는 관행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 시장경제에서 미술시장이 성립하면서 그림은 상품으로 거래됐고 제목이 필요해졌다. 전근대 그림 제목은 미술상들이 붙인 게 많다. 미술상들은 케케묵은 그림들을 찾아내 경매에 부치면서 카탈로그를 작성했다. 유산 목록을 참조하거나 그조차 없으면 생각나는 대로 적당한 제목을 붙였다. 이를 근거로 작품이 사고 팔리면서 공인된 제목이 됐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은 직접 자기 작품에 제목을 붙이게 됐다. 미술시장에서 그림을 팔려면 고객에게 자신과 작품을 알려야 했고 전시회가 빈번해졌다. 전시회를 열려면 도록을 만들어야 하고 작품 제목이 있어야 했다.

‘인상, 해돋이’는 제목 하나로 미술사에 엄청난 흔적을 남긴 작품이다. 제목이 아니었다면 이 그림은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클로드 모네는 르아브르의 한 호텔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멀리 부두가 희미하게 보이고 앞쪽에는 작은 배 두 척이 있다. 막 떠오른 주황색 해가 안개를 뚫고 빛을 발하고 있다. 모네는 이 그림을 1874년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이때는 물론 인상주의라는 말이 없었다. 도록 표지에는 그냥 전시회라고만 써 넣었으나 거기 실릴 작품에는 제목이 있어야 했다. 편집을 맡은 르누아르의 동생 에드몽은 모네가 가져온 여러 점의 그림이 다 비슷비슷한 제목이라 골치를 앓았다. 에드몽이 투덜대자 모네는 농담 반 진담 반 대꾸했다. “그럼 ‘인상’으로 하지 그래.”

전시회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한 신문기자는 신랄하게 조롱하는 칼럼을 쓰고 ‘인상, 해돋이’에 착안해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칼럼은 대중의 뇌리에 인상주의라는 단어를 각인시켰다. 전시회에 참여했던 화가들은 이 말을 끔찍하게 여겼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21-09-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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