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사설은 이민자 커뮤니티와의 통합이 절실하다며 이를 상징하는 지단이 대표팀에서 계속 뛰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유독 스포츠에서는 다양한 배경과 환경, 인종 출신의 젊은이들이 성공적인 협력을 보여 주고 있다. 지단이 대표팀에서 은퇴한다고 선수 생활이 끝나는 건 아니지만 거대 클럽의 돈놀이를 위해 뛰는 것과 대표팀에서 뛰는 것은 사회적 역할이 다르다.’
새삼스레 11년도 지난 르몽드 사설을 떠올린 것은 만 45세에도 여전히 프로축구 전남의 골문을 지키는 김병지 때문이다. 그의 K리그 700경기 출전은 축구 내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 축구에선 ‘나이가 차면 후배를 위해 떠나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은퇴를 ‘했다’고 하지 않고 ‘당했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왕왕 있었을 정도다.
김병지는 적어도 그런 생각의 관습에 제동을 걸었다. 지금도 한결같이 몸무게를 유지해 철저한 자기 관리의 모범을 보였고, 구단이나 K리그가 나이 많은 선수의 컨디션을 과학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요즘 흔히 말하는 ‘스토리’의 중요성을 리그에 심었다. 필드 플레이어보다 더 적극적인 플레이와 ‘현장 감독’으로 불릴 만큼 후배들을 지휘하는 요란함으로 끊임없이 얘깃거리를 리그에 공급했다.
한발 나아가 지단의 예에서 보듯 김병지는 특별한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낳고 있다. 은퇴 연령이 밑도 끝도 없이 낮아지던 풍토에 일종의 저지선 역할을 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분석이다. 나이 때문에 지레 주눅이 들었던 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고 하면 지나칠까.
요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충돌 가능성에 우려하는데 김병지의 활약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 스스로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주위에서는 그런(은퇴)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오히려 권순태, 정성룡, 김용대와 같은 후배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삼촌, 더 오랫동안 뛰어 주세요. 저희의 길을 열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내가 더 오래 뛰어야 자신들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 현장과 그라운드가 똑같을 순 없다. 그러나 현 소속팀의 막내로 김병지보다 무려 24살이나 적은 이창민도 “어릴 때 봤던 선수와 함께 뛴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삼촌으로부터 몸 관리부터 시작해 정신력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세대 간 통합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앞으로 777경기 출전까지 노려 보겠다니 그 역할의 확장성이 기대된다.
앞의 르몽드 사설은 지단과 같은 스포츠 스타가 왜 인종 통합을 상징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어 곱씹어 볼 만하다.
‘오늘날의 정치, 미디어, 문화 엘리트들은 상상력과 용기가 부족하다.’
bsnim@seoul.co.kr
2015-07-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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