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일본의 양심 세력/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일본의 양심 세력/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입력 2021-08-31 17:18
수정 2021-09-01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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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2021. 이웃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동네가 평안하다.
대전 2021. 이웃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동네가 평안하다.
일본이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에서 승승장구하며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시기는 변절과 배신이 난무하던 때이기도 했다. 메이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富蘇峰)는 청일전쟁 직후 재빨리 군국주의자로 변신해 자신이 질타하던 정부의 고위직에 올라 조롱거리가 됐다. 국가주의를 공격하던 나카에 조민(中江兆民), 야마지 아이잔(山路愛山) 등 기독교인들은 제국주의의 사상적 나팔수로 변신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동지들의 전향에 배신감을 느끼며 끝까지 저항한 것은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ㆍ1871~1911) 같은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기독교인 중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ㆍ1861~1930) 한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은 일간지 ‘요로즈초호’(萬朝報)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골수 사회주의자와 골수 기독교인의 연대였다.

우치무라는 청일전쟁 때만 해도 적극적인 주전론자였다. 이를테면 그 또한 ‘전향자’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상적 전향자와 달리 우치무라는 시류를 거슬렀다. 우치무라는 승리의 현실에서 비전(非戰)의 논리를 도출했다. 청일전쟁 시기 격렬했던 그의 애국적 열정만큼이나 실망 또한 컸다. 이것은 그대로 전쟁을 부정하는 정신적 에너지로 작용했다. “나의 큰 잘못은 청일전쟁 때 졸렬한 붓을 휘둘러 일본의 행위를 변호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이 완전히 탐욕을 위한 전쟁이었음을 깨닫고, 나는 양심에 대해, 세계 만국에 대해 실로 면목이 없었다. 나는 이후 메이지 정부의 행동을 옹호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의 과감한 노선 변경이었다. 그는 영일동맹을 비판하면서 영국 제국주의가 보어전쟁(1899~1901)에서 보여 준 위선과 파렴치를 공격했다. 보어인들이 마지막까지 버티다 끝내 영국군에 압도당하자 그는 개탄했다. “아, 내가 사랑하는 보어여, 너는 마침내 자유와 독립을 잃어버렸구나. 너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자가 일본이라는 것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부의 일본에서 태어난 것이 부끄럽다.”

고토쿠 슈스이가 지은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1901)의 ‘서문’을 써 준 것도 우치무라였다. 우치무라는 철학도 도덕성도 없는 일본 군국주의는 어린아이 손에 칼을 쥐여 준 격이라며 메이지 정부를 통렬히 공격했다. 100년 전 양심 세력이 힘을 더 키웠다면 동아시아가 훨씬 평화로울 텐데.

2021-09-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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