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플랜 B/이현승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플랜 B/이현승

입력 2022-02-10 20:32
수정 2022-02-1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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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 B/이현승

건물주가 되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꿈도 없는 게 더 문제라면서요
이런 건 꿈도 안 되나요?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거나
실패가 없다면 배우는 것도 없다는 식의
충고라면 사양하고 싶어요
충고가 고충이에요
건물주의 인생은 뭐 쉬울 것 같냐고 하시지만
고층빌딩이어도 좋으니 건물주가 되고 싶어요
요즘 애들 진짜 문제라지만
진짜 문제를 갖고 싶어요
내 문제, 나만의 문제, 진짜 진짜 내 문제
그도 아니면 요즘 애들이라도 되어 보고 싶어요
문젯거리라도 좋으니
우선 존재는 하고 싶어요
빚 없는 거지 같은 거 말고요
빚이라도 좋으니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요
존재하는 게 뭐나고요?

간밤에 폭설이 내렸는데
빈 나뭇가지 위에 눈이 높게 쌓여 있었어요
그토록 가느다란 가지 위에도 높게 눈이 쌓일 수 있다니

아침에 좋은 시를 읽으면 아침 한 끼를 걸러도 좋아요. 낮에 슬픈 시를 읽으면 점심을 걸러도 좋고 저녁에 마음 아픈 시를 읽으면 밥 대신 음악을 들어도 좋지요. 생각이 깊은 시를 만나면 모처럼 위를 비우고 가만히 혼자 어둠 속에서 춤을 추어요. 은하수 속에는 별들이 참 많아요. 색색의 별들이 반짝이는 이유, 종일 마음 아픈 시를 읽었기 때문 아닐지요? 간밤에 내린 폭설.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높게 쌓인 눈. 나뭇가지들이 밤새 생각 깊은 시를 읽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종일 시를 읽고 춤을 추는 세상. 시인들이 꿈꾸는 천국만은 아닐 거예요.

2022-02-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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