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키는 더 자라지 않는 채
짜장면집 배달통처럼
모서리는 허옇게
빛도 바랜 채
차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신호등 앞 길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하루 종일 하품하며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다질링을 여행할 때였지요. 눈발이 날렸습니다. 커피 가게도 식당들도 문을 닫았군요.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지요. 티베트 수제비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고수를 넣은 뜨끈한 수제비를 먹는 동안 문설주에 매달린 A4 크기의 빨간색 우체통을 보았습니다. 색도 바래고 녹도 슬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엽서를 씁니다. J 여긴 추워. 지붕에 큰 배를 올려놓은 호텔에서 시를 쓰다 잠들었지. 해발 2500미터. 왜 배가 필요하지? 노아의 방주? 사랑해. 2통의 엽서를 썼지요. 수신인은 나였습니다. 추운 날 먼 곳에서 편지를 쓰면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먼 훗날 낡은 엽서 한 장 찾아올지 모릅니다.
곽재구 시인
2021-1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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