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귓속말/오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귓속말/오늘

입력 2021-12-16 20:42
수정 2021-12-17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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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말/오늘

기부식은 언제 해요? 나는요 소나타 10번을 칠 수 있어요 피아노 페달을 밟으면 발을 올려놓고 춤추는 것 같아요 아, 방금 컵이 낸 소리는 C#이에요 한 모금 마셨기 때문이죠 슬픔을 파는 상점에 다녀온 날은 하루 종일 소리들과 음계 맞추는 놀이를 해요 뒷담에 앉은 고양이의 수화는 높은 레, 강아지는 운동화를 물고 낮은 미에서 높은 도로 갑자기 달려가요 내 친구 연준이는 노래를 잘하고 민하는 무용을 해요 연준이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연준이 그림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이따가 베토벤 로망스 2번을 칠 건데 어려운 곡일수록 더 많은 기부를 받을 수 있대요 옷이 작아서 부끄럽지만 지팡이를 짚을 때 몸을 숙이면 모를 거예요 근데요 피아노는 어떻게 생겼나요?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춤을 추고 싶어요. 바람이 포플러나무 이파리를 흔드는 것 같고 새들이 신비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요. 옥천 샛강의 물고기들이 겨울의 춤을 추는 것도 보기 좋아요. 절제된 율동으로 군무를 추죠. 강이 얼기 직전의 마지막 축제인 셈이죠. 강이 얼면 징검다리에 앉아 귀를 기울여요. 얼음 아래 겨울의 시들은 또 얼마나 침착하고 부드러운지요. 오늘 시인의 시를 읽으며 춤을 추고 싶었지요. 세상의 모든 풍경들은 사랑의 음계를 지니고 있지요. 기부라는 말 따뜻해요. 인간의 냄새가 나지요. 군고구마 냄새도 나고 갓 볶은 커피 향도 나요. 모차르트의 작은 별 바리에이션을 듣는 것 같아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네요. 오늘 우리 기부하러 갈까요?

곽재구 시인
2021-12-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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