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 아래 작은 샘
언제나 흰 구름 떠가는 높은 하늘만 내어다보는
수풀 속의 맑은 샘
넓은 하늘의 수만 별을 그대로 총총 가슴에 박은 샘
두레박이 쏟아져 동이 가를 깨지는 찬란한 떼별의 흩는 소리
얽혀져 잠긴 구슬 손결이
웬 별나라 휘흔들어 버리어도 맑은 샘
해도 저물녘 그대 종종걸음 훤 듯 다녀갈 뿐 샘은 외로워도
그 밤 또 그대 날과 샘과 셋이 도른도른
무슨 그런 향그런 이야기 날을 새웠나
샘은 애끈한 젊은 꿈 이제도 그저 지녔으리
이 밤 내 혼자 나려가 볼거나 나려가 볼거나
옥천 샛강을 따라 걷습니다. 강물은 가을 햇살의 천국입니다. 사라센, 비단, 카펫, 은하수, 터키식 커피, 세월, 면봉, 빗살문토기, 국경 열차, 차이 한 잔…. 윤슬 위에 반짝이는 단어들 생각하며 마음 따뜻해집니다. 영랑은 아름다운 꿈을 지닌 단어들을 사랑했지요. 좋은 꿈을 지닌 단어들이 모여 순정한 시의 마을을 이룬다 생각한 거지요. 영랑의 이 생각이 참 좋아요. 수풀 속 맑은 샘이 있습니다. 별은 총총 빛나고 그대와 나, 샘, 셋이 향그런 이야기로 밤을 새웁니다. 젊은 날의 애끈한 꿈들이 모인 은하수는 왜 이리 아련한지요. 영랑에게 이 아침 차이 한 잔 건넵니다. 오세요, 그대 옥천의 윤슬을 보여 드리지요.
곽재구 시인
2021-10-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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