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노마드. 8월 1일까지 인디프레스 개인전.
사람으로 살기에
사랑과 싸우오
나 붙잡혀
그 끝엔 지기 위해
하여 나 으스러져
미소 띠며 묻힌 들판에
온통 하얀 백합으로
번지어 살겠소
더 사랑과 싸워
더 지고 쓰러져
더 하얗게 번지어 살겠소
영원토록 영원히
오, 죽음과는 싸우지 못하오
죽음은 없으니, 숨 쉬는
사랑과 싸우며
살고 살고 더 살겠소
순천의 골목서점 심다에서 ‘미’라는 제목의 시집을 보았다. 시인의 이름은 표지에 없다. 신춘문예나 신인상 당선 같은 것은 꿈꾸지 못했으니 그냥 자신이 쓰고 싶은 시를 쓰고 그 시편들을 모아 자비 출판을 한 것이다. 출간을 위해 마트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1년쯤 했을지도 모른다. 시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 읽어 주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부르고 싶은 노래를 홀로 부르는 것이다. 시의 진정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숨 쉬는 사랑과 싸우며 살고 살고 또 살겠다는 이의 마음 앞에서 어떤 죽음도 겸손해질 것 같다. 간기에서 류혜란이라는 깨알보다 작은 이름을 보았다.
곽재구 시인
2021-07-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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